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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환 경제부 차장 |
기획재정부 5년차 한 사무관은 최근 고교동창 모임을 가서 충격을 받았다. 공부잘하는 후배들이 모두 의대나 법대로 진학하려는 통에 행정고시 후배들을 찾아볼 수가 없어서다. "명예를 천직으로 생각하는 시대는 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돈 잘벌고, 자유로운 직업이 제일이라는 인식이 강한 셈이죠"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공무원 사회가 흔들린다는 소식은 사실 최근 불거진 뉴스는 아니다. 매 정권 말기가 들어설 때마다 권력지향적인 일부 공무원들의 행태가 문제시되곤 했다. 과거 우리사회를 들끓게 했던 이른바 '변양호 게이트'는 무죄로 판결되면서도 아직까지 당사자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변씨는 당시 잘 나가던 중앙부처 국장 자리를 물리치고 도전정신으로 민간으로 나갔지만 결국 온갖 고충을 겪어야 했다. 복지부동을 넘어 이제는 '피해의식'이 만연화되는 양상에 우려감이 일고 있다.
국가를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을 지닌 공무원도 적잖다.
지식경제부에 들어온 지 몇년 되지 않은 한 여성 사무관은 KAIST를 졸업하고, 잘나가는 기업에서 핵심프로젝트를 맡았지만, 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그녀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국가에 봉사한다는 생각을 하면 일이 힘들지 않다"고 했다. 어떤 날은 휴가를 반납하면서까지 선배의 가는 길을 배웅하는 워커홀릭으로 통한다.
공무원이 동네북으로 전락해 버린 작금의 세태에 그래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다. '공직사회 기강 다잡기'를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블리즈 오블리제'의 원칙이 중요한 것은 권력을 가진쪽에서 솔선수범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과하면 부작용이 있게 마련이다.
마치 초등학생들 학적관리하듯이 출·퇴근 시간을 일일이 체크하고, 하루 중 그래도 가장 즐거운 점심시간을 시간에 쫒기듯 허겁지겁 해결해서야 업무효율이 나겠는지에 대해서는 재고해봐야 한다. 현장을 강조하면서 책상머리로 이끄는 채찍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년 말이면 공무원 사회에는 일대 변화가 온다. 정부 부처의 세종시 이전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아직 제대로 거처를 마련하지 못한 새내기 공직자들 뿐만 아니라 가족과 생이별을 고해야 하는 고참급들도 그저 하늘만 쳐다본 채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매주말이면 가족을 찾아 버스에, 열차에 몸을 싣는 주말부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런 판국에 공직사회의 기를 더이상 꺾어서는 곤란하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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