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 누에의 무한 가능성, '뉴 실크로드'의 문 열다

  • 정광용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장

상전벽해(桑田碧海).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다는 고사성어다.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을 때 사람들은 이 말을 쓰곤 한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무색할 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사양길로 접어들었던 뽕밭의 누에산업 또한 변신을 꾀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삼한시대 이전부터 옷을 만들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누에는 사람들에게 실크를 제공하며 기특한 곤충으로 대접받았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누에산업의 최대 전성기를 맞으며 한때 2억7000만 달러의 수출액을 달성하기도 했다. 누에는 비단 외에도 우리 민족의 먹을거리까지 해결해주던 중심산업의 역할을 했다.

하지만 생활패턴이 서구화되고, 편리하고 간편한 복장을 선호하면서 비단을 찾는 손길이 뜸해졌다. 더불어 중국산 저가의 생사(누에고치에서 뽑아낸 실) 공급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구조적 약점으로 누에산업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5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인간의 삶에 적응하며 관여해온 누에는 그냥 잊혀지기엔 아까운 곤충이다.

최근 발상의 전환을 통해 누에가 갖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이용한 새로운 기능성 누에 제품이 개발되면서 누에산업의 '뉴 실크로드'가 열리고 있다.

섬유산업의 벽을 넘은 누에는 건강식품으로 탄생했다. 누에가 새들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축척한 혈당강하물질은 '누에 분말 혈당강하제'로 만들어져 혈당 관리를 돕고 있다.

발생조건이 까다로워 주로 티베트 등 고산지대에서 생산됐던 동충하초도 누에의 덕을 톡톡히 봤다. 자연에서 채취되는 동충하초는 주로 죽은 곤충에 기생해 크기가 작고 품질이 균일하지 못했다. 하지만 누에의 몸을 빌리면 자연채취산과 약효가 동등한 동충하초를 실내에서도 대량 생산할 수 있다.

생활용품에서도 누에의 역할은 탁월하다. 실크를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은 잇몸 상처에 효과적인 치약과 피부미용에 좋은 화장품으로 변신했다. 누에가 뽑은 원사에서 분리된 세리신은 피부의 천연보습성분과 비슷해 보습 기능성 비누로도 개발됐다.

실크 단백질막이 갖고 있는 성질은 의료용 소재로 변했다. 우리 몸에 빠르게 적응할 뿐 아니라 다양한 구조를 쉽게 만들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는 누에고치의 단백질막은 인공 뼈와 인공 고막으로 만들어져 거부감 없는 천연 조직으로 평가받았다. 이 외에도 뽕잎을 이용한 뽕잎차와 아이스크림, 오디주스는 건강한 유기농 간식거리로 새 옷을 입었다.

이처럼 누에산업은 바이오 기술 및 의학과 융·복합된 첨단산업으로 거듭나며 농가 소득으로 이어지면서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 3년 사이 누에 농가와 뽕밭 면적은 2배 넘게 늘었고 농가 한 가구당 평균 소득은 10년 전보다 30% 증가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누에의 가능성과 잠재력은 끝이 없다. 최근 우리 농업엔 상상을 뛰어넘는 마술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시선의 폭을 넓히고 생각의 틀을 깨면 고정관념으로 보이지 않던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진다.

실크생산이라는 타이틀에 얽매여 있던 누에가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그 이상의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면, 누에산업은 사양산업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농가와 농촌에 힘을 보태며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끊임없는 누에의 변신을 통해 우리 농촌과 더불어 앞으로 펼쳐질 누에산업의 새로운 미래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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