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증시는 큰 폭으로 떨어졌고,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며 엔화와 스위스프랑화 가치가 치솟았다. 특히 엔·달러 환율은 78엔 전반까지 밀리며 사상 최저치를 위협했다. 반면 최고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 현물 가격은 온스당 1.622.49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당초 백악관과 의회 지도부는 아시아 금융시장이 열리기 전인 24일 오후 4시(한국시간 25일 오전 5시)까지 부채한도 증액안을 내놓을 방침이었지만, 계획이 틀어지자 우려했던 대로 이날 시장에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2008년 9월 美 구제금융안 부결 악몽 재현?
로이터는 이날 미 정치권의 '치킨게임'이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미 국채와 달러화에 대한 투매 압력이 고조돼 미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여파는 글로벌 증시와 머니마켓펀드, 고위험 자산시장의 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미 기업들의 경기 전망을 악화시켜 안 그래도 취약한 미 경제를 더 약화시킬 수 있다고 로이터는 경고했다.
시장에서는 특히 미 의회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안을 두고 힘겨루기를 했을 때 빚어졌던 혼란이 재현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2008년 9월29일 700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안이 하원에서 부결되자 뉴욕증시 다우지수는 777.68포인트 폭락했다. 이는 하루 기준 사상 최대 낙폭이었다.
모하메드 엘에리언 핌코 공동 최고투자책임자(CIO)는 "미 정치권의 협상이 수일 내에 반전되지 않으면, 그 여파는 이미 취약한 미국과 세계 경제를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美 국채 투매…이번주 국채 입찰 촉각
또 다른 문제는 미 국채에 대한 대규모 팔자세가 이번주 예정돼 있는 미국의 국채 입찰 성패를 위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번주 990억 달러의 국채를 발행할 예정인데, 전 세계에 유통되는 미 국채의 절반을 보유하고 있는 중앙은행들은 이미 미 국채 매입 규모를 축소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은 달러화에 악재로 작용, 스위스프랑과 엔화가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을 예상하고 있다. 이날 스위스프랑·달러 환율은 사상 최저인 80.33상팀(0.01프랑)까지 밀렸고, 엔·달러 환율은 한때 대지진 여파로 엔화값이 급등했던 지난 3월17일 이후 최저치인 78.12엔까지 추락했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디폴트가 현실화하면 30년 만기 미 국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이 디폴트 사태에 빠지거나 신용등급을 강등당하는 것은 투자자들의 신뢰를 무너뜨려, 미국의 장기적인 재정 통제 능력에 대한 불신을 사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반면 미국의 단기 국채는 그만큼 시장 규모와 유동성이 큰 투자 대안이 없는 만큼 대혼란 속에도 랠리를 펼칠 수 있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합의안이 변수…적자 감축 대책 없으면 '디폴트'
합의안의 내용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미 정부의 디폴트 시한인 8월2일 1초 전에만 관련 법안이 나와도 문제될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움직임이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미 의회가 부채한도 증액에 합의하더라도 장기적인 재정감축 계획이 포함되지 않으면 '트리플A(AAA)'인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AA'로 떨어뜨릴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시장이 어떤 식으로든 향후 10년간 재정적자를 3~4조 달러 감축하는 방안을 선호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로이터는 미 의회가 내년 11월 대선까지는 재정적자 감축안에 결코 합의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이어 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하면 무디스와 피치도 따라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각에서는 시장이 우려하는 '아마겟돈'과 같은 대혼란은 빚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브라이언 벨스키 오펜하이머앤드코 수석 투자전략가는 "기업들의 재무상태가 탄탄하고, 미 증시의 수익률이 높은 만큼 미 경제로 자금 유입이 이어질 것"이라며 "시장의 혼란은 단기적인 현상에 불과해 결국 주식을 싸게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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