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 연주자와 뮤지컬 배우가 결합된 '액터-뮤지션 뮤지컬' 모비딕이 오는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 111서 공연된다. |
(아주경제 김나현 기자) 첼로가 한쪽 다리를 잃은 선장의 의족이 되고, 바이올린의 활은 고래를 잡는 작살이 된다.
뮤지컬 ‘모비딕’에서 악기는 단순한 ‘악기’가 아니고, 배우는 그저 ‘배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서 악기는 캐릭터를 상징하는 도구다. 또한 배우들은 연기와 연주를 오가는 ‘멀티플레이어’가 된다.
뮤지컬 ‘모비딕’은 국내 최초의 ‘액터-뮤지션 뮤지컬’이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더블베이스, 기타, 클라리넷, 색소폰, 트럼펫, 드럼 등 다양한 악기가 등장하고 전문 연주자와 뮤지컬 배우가 결합된 구성으로 음악과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인다.
해외에서는 ‘스위니 토드’나 ‘컴퍼니’ 등이 액터-뮤지션 방식을 도입한 바 있지만 국내에서는 ‘모비딕’이 처음이다.
처음에는 허먼 멜빌의 원작과 클래식이 얼마나 조화로워질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모던하면서도 초현실주의적인 원작의 분위기가 어떻게 표현될 지 궁금했다. 하지만 조용신 연출의 뮤지컬 ‘모비딕’의 실험적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원작의 분위기가 다양한 음악적 기법으로 되살아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 선율은 이스마엘(신지호)와 퀴퀘그(이일근)의 마음의 벽을 허물어주기도 하고, 더블베이스의 육중한 저음은 포효하는 흰고래 모비딕을 표현해낸다. 여러 악기의 울림이 동시에 이뤄지자 이는 곧 파도가 넘실대는 거친 바다가 연상된다.
배우와 연주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진행되는 보통의 공연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무대였다.
뮤지컬 ‘모비딕’은 흰고래 모비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선장 에이헙의 복수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하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라는 이분법적인 공식이 적용됐던 기존의 해석과는 달리 조용신 연출은 ‘자연과 인간의 공존, 조화’를 담아낸다.
다소 철학적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야, 이거 재밌는데?”라는 말을 연발하며 연신 박수를 쳐댄다.
고래잡이 선원을 꿈꾸는 소년 이스마엘 역의 팝피아니스트 신지호와 작살잡이 퀴퀘그 역의 집시 바이올리니스트 KoN(이일근)의 변신도 볼거리다.
이들의 연기는 본래 아티스트였는지 배우였는지 분간이 안될 정도다. 중간 중간에 선보여지는 이들의 능수능란한 연주솜씨는 관객들을 “역시…”하며 절로 감탄하게 한다.
조용신 연출이 말한 “이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장르지만 가장 대중 속에 머물고 있는 장르화”가 여지없이 뮤지컬 ‘모비딕’에서 실현되어 진다. 초현실성이 음악과 함께 무대화되면서 ‘이해’와 ‘감동’을 이끌어낸다. 몽환적인 조명과 무대 장치도 이를 돕는데 한몫 한다.
‘모비딕’을 위해 새로 악기를 배우기도 했다는 다른 배우들의 노력 또한 값지게 다가온다. ‘액터-뮤지션 뮤지컬’의 첫발을 내딛은 뮤지컬 ‘모비딕’으로 인해 제2, 제3의 실험적인 작품들의 성공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20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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