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는 지금까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명칭)는 일본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해왔고, 입국이 거부된 시모조 마사오(下條正男) 다쿠쇼쿠(拓殖)대 교수는 ‘다케시마 문제 연구회’의 대표로 있으면서 이같은 억지 주장에 앞장서온 학자다. 일본 언론이 즐
겨 인용하는 이른바 ‘다케시마 전문가’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문제를 오래 연구해온 일본 학자들은 시모조 교수와 달리 미디어에 등장하기를 꺼리긴 해도 중요한 연구 성과들을 남겨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호리 가즈오(堀和生) 교토대 교수가 1987년에 공개한 ‘1877년 태정관 지령’ 문서의 존재다. 태정관(太政官)은 일본 연호상 메이지(明治) 원년(1868년)부터 메이지 18년(1885년)까지 있었던 국정 최고 기관으로 현재 일본 내각의 전신이다. 문서에 따르면 1877년 당시 태정관은 시마네현에 ‘울릉도와 독도(外一島)는 일본과 관계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대해 “외일도(外一島)는 독도가 아니다”는 반론이 제기됐지만, 이후 태정관 지령에 첨부된 약도까지 공개되면서 외일도가 독도이고, 일본 정부는 1877년까지만 해도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 땅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재일 독도 연구가인 박병섭씨의 책 ‘독도=다케시마 논쟁’에 따르면 ‘다케시마의 날’을 만든 시마네현조차 인터넷 홈페이지에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영토’라는 주장을 올려놓지 않은 데에는 이런 배경도 작용했다.
최근에는 ‘일본 고유 영토론’ 외에 ‘일본 내각이 시마네현 어부 나카이 요자부로(中井養三郞)의 요청에 따라 1905년 주인이 없는 땅인 독도를 영토로 편입했다’는 이른바 ‘무주지(無主地) 선점론’에 대해서도 활발하게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비교적 중립적인 시각에서 독도 문제를 연구해온 이케우치 사토시(池內敏) 나고야대 교수는 최근 일본 역사전문 잡지 ‘역사평론’에 발표한 ‘다케시마/독도 논쟁은 무엇인가’라는 글에서 무주지 선점론에 대한 논의 동향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케우치 교수는 이 글에서 나카이가 사실은 대한제국 정부에 먼저 “독도 부근 강치잡이를 독점하게 해달라”고 요청하려고 했고, 일본 내각은 애초 독도 편입에 난색을 보였고, 시마네현 사람들이 1906년에 울릉도에 가서 ‘독도가 일본 영토로 편입됐다’고 전하자 대한제국 관리들이 “울릉군에 속한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고 반발했다고 소개했다. 이케우치 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대한제국 관리들의 발언에는 뭔가 (법적) 근거가 있을 텐데 공식문서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며 ‘연구상 공백’이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