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고 탁월한 문체로 인간 내면의 욕망을 섬세하게 그려온 중견 소설가 서하진(51) 경희대 국문과 교수가 최근 장편소설 '나나'(현대문학)를 발간, 일상에서 갈등하면서도 끈끈한 사랑을 나누는 가족 관계를 다뤘다.
프랑스의 소설가 에밀 졸라(1840∼1902)의 동명 소설 ‘나나’를 연상시키는 서하진의‘나나’는 끝없는 욕망을 추구하는 ‘팜므파탈’ 나나와 그녀에게 사로잡힌 의붓 오빠 인영이 주인공이다.
사회 환경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계보학적 접근으로 보여주기 위해 에밀 졸라가 만들어낸 파리의 여배우 ‘나나’는 조상으로부터 광기와 나태와 도취를 물려받은 신경질적 기질의 인물이다.
이에 비해 서하진의 ‘나나’는 사업을 호기롭게 꾸려갔지만 말에 진실성이 없고 거짓말을 자주 하곤 했던 친아버지와 고상한 화가이자 우아한 교수로 살았던 친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나’의 양가적 모습을 보여준다.
“나나가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애는 이해할 수 없는, 도무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는 거짓말을 늘어놓기를 즐겼다.”(36쪽) 나나는 유부녀임에도 자신의 매력을 앞세워 여러 남자를 유혹한다. 비엔날레의 총감독이 되려고 고급 공무원에게 접근하고 오빠마저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대상으로 삼는다.
작가는 “2007년, 신정아를 비롯한 가짜 학력 사건이 연달아 불거졌을 때 가짜와 거짓말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 그때부터 소설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그는“이번 소설이 그런 시도의 첫 작품이며 앞으로 삼풍백화점 붕괴 등 여러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나나'에서 작가는 "삶에서 겪게 되는 사건들을 위한 예방 접종은 없다"고 말한다. 삶을 견뎌내는 이들의 외로운 삶의 이면을 통해 결국 자신의 자리로 회귀할 수밖에 없는 현대인들의 고독과 그것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모순된 삶의 내면을 섬세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주변의 남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치명적 매력을 발산하며 욕망에 집착하는 소설은 비극으로 끝난다. 작가는 나나가 괴한에게 일격을 당해 쓰러져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지는 것으로 소설을 매듭지음으로서 나나를 용서하지 않는다.
작가는 “가족 사이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면 결국 사회도 행복하거나 건강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1994년 단편 '그림자 외출'로 월간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작가는 그동안 소설집 '책 읽어주는 남자', '사랑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 '라벤더 향기', '비밀', '요트'와 장편소설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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