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자에게 “정상적인 게임이 안 될 것 같다”고 고충을 털어놓는 등 ‘탱크’란 애칭이 무색하게 심신이 많이 지쳐 보였다.
그는 “목사님은 내게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존재였습니다”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목이 메인듯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최경주는 지난 2일 오전 하 목사가 소천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비보를 접하고 한 걸음에 귀국길에 올라 다음날 새벽 입관식까지 고인의 곁을 지켰다.
그러곤 미국으로 다시 날아온 게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개막을 불과 하루 앞둔 3일이었다. 그는 “시합을 하는 건지 꿈속을 헤매는 건지 분간이 안됐다”고 했다. 결국 4라운드 합계 6오버파로 59위에 그쳤다.
그는 “시합은 잘 할 수도, 못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목사님을 더 이상 볼 수 없으니 너무 아쉽고 슬프다”고 말했다.
최경주가 하 목사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2년 컴팩 클래식에서 첫 PGA 우승을 차지해, 95년부터 다니던 온누리교회에 그의 이름 석자가 알려지면서다.
그 뒤로 하 목사가 하늘의 부름을 받을 때까지 두 사람은 ‘기도’를 끈으로 시간을 함께 했다. 최경주는 “3주 전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 최경주재단 후원금 모금 행사에 가수 윤복희 권사가 오시도록 섭외를 부탁해 흔쾌히 승낙을 받았는데 그것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대회 직전 한국을 다녀온 최경주의 ‘의리’는 PGA 안팎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 많은 선수들은 최경주에게 다가가 “미안하다”, “안타깝다”고 조의를 표하고 있다.
최경주의 ‘백전노장’ 캐디인 앤디 프로저는 기자와 만나 “다들 놀라워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PGA에서 최경주처럼 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고 했다.
최경주는 아직도 충격이 크지만 첫 메이저 우승의 집념은 접지 않은 듯 했다. 그는 “모든 걸 내려놓고 편안하게 치면 우승도 하는 게 골프”라면서 “나이가 들수록 몸은 힘들어지지만 생각하는 것은 더 커지고 넓어진다. 그것이 골퍼의 인생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최경주는 이날 섭씨 40도와 습도 100%에 가까운 찜통 더위 속에서 퍼팅 감각을 되찾는데 열중했다.
최경주는 “10년 전 이곳에서 열린 PGA 챔피언십에 출전했기 때문에 코스는 낯설지 않다”며 “목사님 조언대로 항상 낮은 곳에서 배운다는 겸손한 자세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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