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서유리)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번역의뢰를 받고 사실은 좀 난감했다. 여자아이가 납치되어 학대당하는 내용인데 공교롭게도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유혈이 낭자하고 끔찍하고 구체적인 잔인한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번역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저자는 범인이 소녀를 어떻게 했는지 구체적 묘사대신 많은 부분을 열어두어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그래서 책을 덮어도 두고두고 생각나면서 오래도록 서늘함과 슬픈 여운을 남긴다.
'사라진 소녀들'(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뿔 웅진문학에디션)은 독일 사이코스릴러 소설계의 신동으로 평가받는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네번째 작품으로 수개월간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작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지만 독일에서는 상당히 각광받고 있는 작가다. 주로 영미권 작가들이 독식하고 있는 스릴러 장르에 독일에서도 내세울만한 작가가 탄생했다고 반기는 분위기다.
여덟살때 처음으로 스릴러 소설을 읽게 됐다는 저자는 덕분에 현실 이면에 숨어 있는 무시무시한 세계에 눈뜨게 되었다고 한다.
스티븐 킹의 소설과 함께 청소년 시절을 보내며 스릴러 작가의 꿈을 키웠다는 저자는 특히 무시무시한 이야기나 섬뜩한 이야기를 전할 때 특별한 희열을 느낀다고 말한다.
'사라진 소녀들'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10년전 여름날, 한적한 마을에서 앞을 볼수 없는 열살짜리 소녀 지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지나의 오빠 막스는 여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깊이 안은채 세상을 향한 복수심을 불태우며 유럽 챔피언 타이틀에 오를 정도로 유명한 권투선수로 성장한다.
그리고 어느날 장애 아동보호시설에서 시각장애가 있는 열살난 여자아이가 또다시 사라진다. 10년간 가슴에 상처를 묻고 산 막스는 이번에는 사건을 직접 파헤치기로 결심한다. 그러면서 소설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사이코패스의 세계로 발을 내딛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상처와 사연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순간, 원망과 증오가 고개를 들고, 섬뜩한 인간의 광기에 전율을 느끼게 된다.
아직도 학계에서는 인간의 사이코패스 성향이 유전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지 아니면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소설을 읽다 보면 환경적인 요인도 결코 무실할 수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저자는 이 책에서 책임의 문제,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때 벌어지는 일들과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와 광기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 소설의 매력에 푹 빠져보시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책을 덮은 다음에 다리위로 뭔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느낌이 찾아온다.…….
■서유리= 현재 국제회의 통역사와 번역가로 활동중이다. 옮긴책으로 '카라바조의 비밀', '내 남자친구의 전 여자 친구', '월요일의 남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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