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골프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한 키건 브래들리(25·미국)가 시상식도중 짬을 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15일(한국시각) 미국 조지아주 존스 크리크의 애틀랜타 어슬레틱클럽(파70·길이7467야드)에서 끝난 USPGA챔피언십(총상금 750만달러)은 ‘무명 신인’의 스타 탄생을 알린 점 외에도 ‘골프는 장갑을 벗을 때까지 아무도 결과를 모른다’는 사실을 다시한번 일깨웠다.
이 클럽의 마지막 네 홀(15∼18번홀)은 톱랭커들도 파 잡기가 만만치 않은 곳. 브래들리는 15번홀(파3·길이259야드)에서 칩샷을 연못에 쳐넣으며 6타(트리플 보기)를 하고 만다. 선두권과 5타차로 벌어졌다. 선두추격에 바쁜 그의 발걸음이 더 무거워진 것은 두 말할 나위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골프에서 안전한 선두는 없다.남은 세 홀에서 만회할 기회는 있다”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16번홀(파4) 버디에 이어 17번홀(파3)에서 10m가 넘는 버디퍼트를 성공하며 합계 8언더파 272타로 경기를 마쳤다.
바로 뒤에서 플레이하던 제이슨 더프너(34·미국)는 15번홀 티잉그라운드에 오를 때만 해도 2위와 4타차나 났다. 네 홀 남기고 4타차 선두였으므로 우승컵은 그의 몫이 되는 듯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단이 일어났다. 티샷이 물에 들어가는 바람에 보기를 하더니 16,17번홀에서도 보기를 기록했다. 3연속 보기로 브래들리와 공동 선두가 되면서 연장 돌입을 허용하고 말았다.
USPGA챔피언십은 공동 선두가 나올 경우 ‘3홀 연장전’을 펼친다. 올해는 16∼18번홀에서 치러졌다. 불과 30분 전 연속 버디를 잡고 천신만고끝에 연장에 돌입한 브래들리 쪽이 심리적으로 앞섰다. 브래들리는 연장 첫 홀에서 버디를 잡고, 두 번째 홀에서는 보기를 한 더프너를 1타차로 따돌리고 ‘워너메이커 트로피’을 안았다. 우승상금은 144만5000달러(약 15억6000만원).
제93회 USPGA챔피언십은 최종일 세 홀을 남기고 5타나 뒤져있던 선수가 공동선두가 되고 연장전끝에 드라마틱한 우승을 차지한 것 외에도 얘깃거리를 많이 남겼다. 그는 이번 대회가 첫 메이저대회 출전이다. 그런데 덥석 우승했다. 메이저대회 첫 도전에서 우승한 사례는 2003년 벤 커티스가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한 이후 8년만이고 1913년 프란시스 오위멧이 US오픈에서 우승한 이래 약 100년만에 세 번째 나온 진기록이다. 그는 또 2000년 US오픈(그레임 맥도웰)이후 7연속으로 ‘메이저 대회 첫 우승자’가 됐다. 이번 대회를 포함, 최근 13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자가 모두 다른 것도 처음있는 일이다. 브래들리는 그립끝을 배꼽에 고정시킨 후 스트로크를 하는 ‘벨리(belly) 퍼터’를 쓴다. 롱퍼터를 사용한 선수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한 것도 그가 처음이다. 타이거 우즈의 커트탈락으로 허전해진 미국팬들에게 그의 우승은 자존심이자 단비였다. 미국선수들은 지난해 4월 필 미켈슨이 마스터스에서 우승한 이래 지난달 브리티시오픈까지 6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하던 터였다.
미국 뉴욕주 세인트 존스대에서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후 2008년 프로가 된 그는 미국LPGA 메이저대회에서 6승을 기록한 팻 브래들리의 조카다. 팻이 메이저 3승째를 기록하던 1986년에 태어난 그는 어렸을 적엔 스키를 좋아했으나 15세 되던 해에 스틱 대신 클럽을 잡았다. 팻과 클럽프로였던 아버지한테서 골프를 배웠다. 메이저리그 명문 구단 보스턴 레드삭스의 열혈팬으로 웬만한 장소에는 ‘B’자가 선명한 레드삭스 모자를 쓰고 다닐 정도다. 지난해 내션와이드(2부)투어에서 상금랭킹 14위를 한 덕분에 올시즌 미국PGA투어에서 뛸 수 있었고, 투어 24개 대회 출전만에 ‘대어’를 낚았다. 188cm 86㎏의 호리호리한 체격에서 300야드에 육박하는 거리를 낸다. 5월말 바이런넬슨챔피언십에서 투어 첫 승을 기록하며 다크 호스로 뽑혔다. 그 때에도 연장전에서 리안 파머를 물리쳤다. 투어 2승을 모두 연장전에서 거뒀으니 그의 ‘멘탈’도 알아줄만 하다. 올해초 세계랭킹 329위였던 브래들리는 지난주 108위였다가 이번 우승으로 29위로 뛰어올랐다.
그 반면 더프너는 다잡았던 대어를 놓치고 말았다. 1999년 브리티시오픈에서 장 방드 벨드가 마지막 홀에서 트리플 보기를 하며 연장전 끝에 폴 로리에게 우승컵을 내준 것과 비교될만큼 그는 ‘메이저 몰락’ 사례로 기록될 법하다. 더프너는 2월 피닉스오픈에서도 연장전끝에 마크 윌슨에게 막혀 투어 첫승 기회를 놓쳤다.
한국(계) 선수 중에서는 케빈 나(28·타이틀리스트)가 공동 10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냈다. 최경주(41·SK텔레콤)는 공동 39위, 2009년 이 대회 우승자 양용은(39·KB금융그룹)은 공동 69위를 각각 기록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