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후 10시경 서울역 광장에 노숙인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이들은 구걸한 돈으로 소주나 막걸리를 사 마시고 주변 길가에 누워 잠을 청하는 것이 일상이다. |
(아주경제 이명철 기자) "솔직히 돈이 있어도 한명에게 주면 다들 달려들까 무서워서 주지 못하겠어요."
하루 평균 약 30만명이 이용하는 서울역이 노숙인들에게 점령당했다. 매일 구걸과 술판, 욕설이 난무하며 악취가 진동한다. 이용객들의 안전이 우려될 지경이다.
지난 14일 오후 10시 무렵 찾은 서울역 일대는 이미 노숙인들의 거대한 캠핑장으로 변해있었다. 광복절까지 이어지는 연휴 때문인지 서울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은 많은 편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노숙인들이 서울역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역사 앞 광장에서 노숙인들은 한눈에 봐도 초라한 행색을 하고 푼돈을 요구하고 있었다. 선뜻 돈을 내어주는 사람은 찾기 힘들었지만 개의치 않고 옆에 있는 사람에게 다시 구걸을 시도했다.
이들의 목표는 주로 혼자 약속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나 여성이었다. 상대적으로 돈을 받기가 쉬운 듯 했다. 옆에서 혼자 있던 여성에게는 약 7~8분 새 3명이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 이 여성은 흠칫 놀라며 거절했지만 몇백원이라도 달라는 이들은 결국 동전 몇 개를 받아가기도 했다.
서울역 내의 한 가게 주인은 “예전에는 악취가 말도 못할 정도였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손을 내저었다. 이곳에 있던 철도경찰도 “새벽에 한시간 가량 대청소를 실시한 후 문을 열면 노숙인들이 다시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역사를 나와 계단을 내려서자 큰 소리로 떠들며 술을 마시는 노숙인 무리가 눈에 들어왔다. 웃옷을 벗은 사람도 있고, 옆에 있던 다른 노숙인과 멱살을 잡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도 보였다. 자연스럽게 이들을 피해 멀리 돌아서 가게 됐다.
이미 대부분의 노숙인들이 자리를 펴 놓은 인근 롯데마트와 고가도로 주변은 더 을씨년스러웠다. 지린내가 진동하는 뒷길에 들어서니 신문지와 비닐로 만든 작은 ‘집’이 양쪽 가장자리에 길게 늘어서 있었다.
서울시노숙인복지시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말 현재 서울 내 거리노숙인은 총 1109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서울역 일대가 161명으로 가장 많았다.
실제로 이날 자정 무렵 서울역 인근을 돌아본 결과 150명 가량의 노숙인들이 있었다. 여름철인 점을 감안하면 그 수는 더욱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원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코레일에 따르면 노숙인 관련 고객의 소리(VOC)는 2008년 37건에서 2009년 49건, 2010년 87건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종류는 위협이나 폭언 등 다양했다.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역의 국가이미지 저해도 우려요소로 꼽히고 있다. 실제 해외 바이어와 함께 서울역을 찾았다가 낭패를 당한 사례도 VOC에 게재됐다. 앞으로 열릴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수 엑스포, 평창 동계올림픽 등의 세계적 행사 대비도 문제다.
역내 보안요원은 "공공시설이긴 하지만 결국 승객들이 이용하는 공간인 서울역에서 노숙인 취침 금지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역에서 만난 한 승객도 "국가 이미지 차원에서 보더라도 서울시나 서울역사 측에서 적절한 대책을 취해야 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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