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신용위기가 확산되면서 달러화 가치가 곤두박질치고 스위스 프랑과 엔화 등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통화가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각국에서는 위기 타개책으로 자국 통화의 가치를 내려 수출 증대를 꾀하는 모양새다.
시장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이 ‘2차 환율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 각국 통화가치 급등에 너도나도 '시장개입'
이달 초 엔·달러 환율은 77엔 초반대까지 급락했다. 엔화값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다.
이에 일본 정부는 지난 4일 4조4000억엔을 투입해 환율 방어에 나섰지만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에 따른 여파로 엔화 강세는 더욱 거세졌다.
11일 엔·달러 환율이 연중 최저치인 76.71엔까지 떨어지자 노다 요시히코 일본 재무상은 14일 “외환시장 문제는 최우선 현안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면밀히 관찰하고 있으며 필요하다면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엔화의 가치는 지난 6개월간 달러대비 약 8.6% 오르며 일본 수출기업들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스위스프랑·달러 환율은 지난 10일 달러당 0.7226프랑으로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스위스 프랑은 40여년만에 달러대비 최고 수준을 달리고 있다.
이에 스위스 중앙은행(SNB)은 이달 초 기준금리인 3개월물 라이보(Libor) 목표치를 0~0.75%에서 사실상 제로(0)에 가까운 0~0.25%로 낮췄다.
당좌대월 규모를 당초 예정된 800억 스위스프랑(약 120조원)에서 1200억 스위스프랑(약 180조원)으로 늘리고, 통화스와프를 실시키로 해 중장기 환리스크 헤지에도 나선 상황이다.
심지어 요르단 SNB 부총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위스프랑이 기록적인 강세 랠리를 보이고 있는 만큼 유로화에 대해 스위스프랑의 가치를 일시적으로 고정(페그)하는 것은 현행 법적 테두리 내에서 가능한 옵션"이라고 밝혀 페그제 도입까지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변동환율제로 돌아서는 국제적 흐름과 역행한다는 이유로 실제 실행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브라질의 헤알화 가치는 지난 2008년 말 이후 달러화 대비 약 35% 가까이 급등했다.
브라질 정부는 이에 160억 달러 규모의 감세 조치를 취했으며 제조업 보호를 위해 무역장벽을 강화키고 했다.
뉴질랜드 달러·달러 환율 역시 88.43센트로 1985년 환율통제 해제 이후 최고치를 기록해 당국이 향후 추이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캐나다와 호주 중앙은행 등은 이미 기준금리 인상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긴축 속도를 늦춰 환율 방어에 나서고 있다.
◇ 기조적 약달러 전망…국제공조 필요 시점
세계 각국은 지난해에도 자국 통화 가치를 하락시켜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환율전쟁을 벌였다.
하지만 ‘환율전쟁’이라는 단어를 공식화했던 브라질의 귀도 만테가 재무장관은 지난달 “글로벌 환율전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세계 각국이 시장 개입에 나서면서 만테가 장관의 경고가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지난 10일 미국의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2013년까지 초저금리 수준에서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각국이 자국 통화의 강세를 막으려고 하는 이유는 이 같은 연준의 결정으로 달러화의 약세 기조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통화의 가치가 급등(환율 하락)하면 가격 경쟁력이 낮아져 수출에 치명타를 입히고 나아가 국가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특히 수출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이 더 심각하다.
이에 각국이 외환시장에 직접 자금을 풀어 통화 가치를 낮추고 위기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은 과도한 재정적자 등으로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로부터 신용등급이 한 계단 강등되는 수모를 겪은 가운데 더블딥(이중침체) 우려까지 높아지고 있다.
만약 경기 부양을 위해 연준이 추가 양적완화(QE3) 정책을 내년에 시행할 경우 달러 약세는 더욱 강화될 수 있어 환율전쟁이 더욱 본격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요 외신들과 시장에서는 높아지는 환율 변동성과 금융시장 불안 등을 국제 공조로 풀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이끌던 미국과 유럽이 금융시장 불안의 주범이 되고 위안화 절상 등을 놓고 선진국과 신흥국의 대립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어 G20 체제가 이미 균열을 보이고 있다는 견해들이 우세하다.
따라서 환율 갈등 수위가 높아지거나 보호주의가 거세지더라도 국제 공조를 통해 이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G20은 다음달 23일 미국, 10월 14일 프랑스에서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를 열고 11월 3일에는 프랑스에서 정상회의를 열어 현재의 금융 불안에 대한 해결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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