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서는 재정위기에 노출된 유럽 은행권이 또 다른 위기의 불씨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특히 이날 한 유럽 은행이 유럽중앙은행(ECB)로부터 고금리로 5억 달러를 차입했다는 소식은 우려를 부채질했다. 이는 유럽 재정불량국들에 대한 익스포저(위험노출액)가 상당한 유럽 은행들이 서서히 한계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는 신호가 되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로젠버그 글루스킨셰프 이코노미스트는 "중앙은행들은 유동성 문제는 몰라도, 지급불능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없다"며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라더스가 무너진 것도 결국 유동성 문제 때문이 아니라 재무제표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 추이(출처 WSJ) |
이들은 최근 시장을 지배하는 것은 당시 받은 충격에 따른 신뢰 저하라며, 무엇보다 미국과 유럽 은행권의 자본구조가 3년 전보다 훨씬 나아진 만큼 최근 상황과 리먼사태를 직접 비교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당시 리먼을 비롯한 미국과 유럽 은행권은 막대한 부실 모기지(주택담보대출) 자산 투자 및 과도한 차입으로 장부가 막장으로 치닫고 있었지만, 이후 부실 자산 처분과 자본 확충 등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상당 부분 회복했다는 설명이다.
롭 모건 펄크럼증권 최고투자전략가는 "2008년에는 은행권이 값어치가 없는 부실 모기지 증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미국과 유럽 은행들이 개별적인 문제를 안고 있으며 문제가 뭔지 잘 알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아트 호건 라자드캐피털마켓 이사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위험회피 투자를 하는 것이 '스테로이드'가 될 수 있다"며 "시장은 지금 패닉 상태에서 무차별 투매에 나서고 있지만, 과거를 되짚어 볼 때 지금은 매도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잠시 뒤로 물러나되 타깃을 정해 기회를 포착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번 해이든 해이든웰스매니지먼트 사장도 "지금은 오히려 매수기회"라고 주장했다. 다만 그는 투자 대상을 콜게이트, 프록터앤드갬블(P&G), 존슨앤드존슨(J&J) 등 우량 방어주나, 올 들어 증시 수익률을 웃돌고 있는 부동산 상장지수펀드(ETF) 등으로 제한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는 이들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의 손발이 묶여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3년 전에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대규모 양적완화라는 유례 없는 비상대책을 쓸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꺼낼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지적이다. 기준금리는 이미 더 낮출 수 없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고조되고 있는 인플레이션 압력은 추가 양적완화 여지를 제한하고 있다.
로젠버그는 "연준은 대포는커녕 권총 한자루도 지니고 있지 않다"며 "연준이 폭죽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성명을 발표하는 것 외엔 없다"고 말했다. 최근 상황을 리먼사태에 빚댈 수 없게 하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다.
이에 반해 제임스 폴센 웰스캐피털매니지먼트 수석 투자 전략가는 "연준의 간섭 없이 시장 스스로 이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며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이 만들어 낸 것은 도덕적 해이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날 제조업지표인 필라델피아 연준지수가 침체 수준으로 추락한 것을 거론하며, "미 경제가 침체에 빠진다면, 이는 우리가 공포로 얼어붙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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