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바(千葉)현 후나바시(船橋)시에서 자위대원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마쓰시타정경숙을 1기로 마쳤으며 이후 가정교사나 도시가스 점검원으로 생계를 유지한 시절도 있었다. 학생 시절의 꿈은 정치가가 아니라 언론인이 되는 것이었다.
1993년 일본신당을 통해 중의원에 진출한 뒤 2000년 민주당으로 갈아탔다. 이후 마쓰시타정경숙 후배인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49) 전 외무상과 젊은 리더로서 당 세대교체를 주도했다. 2002년 9월에는 당 대표 경선에 직접 출마했고, 2005년 9월 경선에선 마에하라를 대표에 당선시키는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민주당에서는 간사장 대리와 국회대책위원장 등을 역임했고, 2009년 9월 민주당 정권 출범시 재무성 부대신을 거쳐 지난해 6월 간 나오토(菅直人) 내각에서 재무상이 됐다.
정책통으로 경제정책에 밝은 노다 재무상은 엔고 저지를 위한 선봉장 역할을 하는 한편, 재정 균형을 위해 적극적인 증세, 소비세 인상을 주장하고 있다.
로이터는 "지난 3월 대지진 후 엔화 강세 저지를 위해 미국, 독일 등 주요7개국(G7)의 공조를 이끌어낸 바 있으며 간 총리의 부채 감축 노력을 지지해왔다"고 소개했다.
우노 다이스케 미쓰이스미토모은행 수석 투자전략가는 "노다는 외환 정책에 대한 관점으로 잘 알려진 사람"이라면서 "국제 회의에 참여한 경험이 많아 해외 사안에 밝다"고 말했다.
1987년 지바현 지방의회 의원을 시작으로 정계에 발을 디딘 노다 재무상은 1986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 25년간 주말을 제외하고 매일 지역구 전철역 앞에서 거리연설을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때부터 '연설은 민주당 내 최고'라는 평을 받았고, 29일 당 대표 경선에서도 어릴 때 경험이나 국회의원 낙선시 경험을 예로 들어가며 "단 한명도 배제하지 않고, 국회를 해산하지 않겠다"고 호소해 표를 끌어모았다.
역사인식이나 정치 성향은 '민주당 내 우익'에 속한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당시 총리가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해 한국·중국 등의 반발을 샀을 때 'A급 전범은 일본 내에서 이미 사면됐으니까 더이상 전범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질문한 적이 있고, 지난해 1월 민주당 한 모임에서 "외국인이 참정권 원하면 귀화(일본 국적 취득)하라"고 말했다. 간 내각에서 외국인 참정권에 명확히 반대하는 각료는 노다와 국민신당에 속한 지미 쇼자부로(自見庄三郞) 우정개혁상 2명뿐이었다.
영토 문제에 민감하고,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해야 한다'거나 '안전보장기본법과 긴급사태법을 만들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초당파 헌법조사추진의원연맹에도 속해 있다.
마쓰모토 다케아키(松本剛明) 외무상과 마찬가지로 하루 2갑을 피우는 애연가지만 담배 증세에 앞장섰다. 애주가이기도 하다. 유도 2단이고, 취미는 격투기 관전이며 초당파 의원연맹인 격투기 진흥 의원연맹 회장이다. 부인과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한편 마쓰시타정경숙은 일본 전자제품 회사인 파나소닉(구 마쓰시타전기) 창업자인 고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1894~1989)가 설립했으며 정관은 '장래의 일본을 짊어질 진정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인재를 육성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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