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브리티시오픈에서 아마추어 최고성적(공동 14위)을 낸 정연진이 ‘대회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을 설명한 대목이다. 그 짧은 파퍼트를 실수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순위가 세 계단이나 올라갔을 것이다. 정연진은 그 퍼트라인에 대해 캐디와 합의를 하고도 정작 스트로크할 때에는 미심쩍어했고, 결과는 뼈아픈 보기로 이어졌다.
골프에서 매 샷은 이처럼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이뤄진다. 그 과정은 샷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의사결정이 한순간 번복되는 일이 있다.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저렇게 생각한 결과다.
골프역사상 퍼트 명수 중 한 명으로 평가되는 보비 로크(남아공)는 “퍼트할 때 의구심을 갖는 것은 치명적이다”(Second guesses in putting are fatal)이라고 말했다. 비단 퍼트뿐일까? 골프는 우유부단보다는 단호함이 더 어울리는 스포츠다. 처음 본 것, 처음 생각한 것이 대체로 맞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사례를 보자.
▲오르막과 내리막
그린에 올라 볼 뒤쪽에서 퍼트라인을 살펴 보니 오르막이었다. 그 다음 뭔가 미심쩍어 볼 반대편에서 보니 이번에는 내리막같다. 혼선이 일면서 갈피를 못잡는다. 마침내 두 번째로 본 라인(내리막)으로 생각하고 살짝 친다. 결과는 ‘턱없이 짧음’이다. 볼 뒤쪽에서 처음 본 오르막 라인은 골퍼가 그린에 접근하면서 관찰하고, 동반자가 퍼트한 것을 참고하며, 쭈그려앉아 살핀 총체적 정보의 결과물이다. 이를 믿지 못하고 즉흥적 판단으로 느낀 것을 취해서야 되겠는가.
▲프린지에서 웨지냐 퍼터냐
볼이 그린 프린지에 멈췄다. 잔디 길이는 그린과 페어웨이의 중간쯤이다. 평소 하던대로 퍼터를 쓸까 하는데, 왠지 ‘좀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동반자는 “퍼터로?”라며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 웨지를 잡는다. 잔디가 길지 않은 그린 밖에서 퍼터와 웨지 중 어느 클럽이 더 사용하기 쉬운 지는 골퍼들이 잘 안다. 실수 확률도 퍼터가 낮다. 좀 불안한 가운데 웨지로 친 볼은 토핑이나 뒤땅치기가 되면서 홀에서 5m이상 떨어진다. 퍼터로 쳐 홀에서 2∼3m안에 볼을 갖다놓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굴릴 것인가 띄울 것인가
볼에서 홀까지는 약 20m. 그 사이에 장애물도 없다. 그린은 평평하고 깃대는 뒤편에 꽂혔다. ‘이보다 더 평이한 상황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 초보자라도 피칭웨지나 쇼트아이언으로 굴리면 볼을 2퍼트 거리에 갖다놓을 수 있다. 평소 십중팔구는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라이가 유난히 좋다. 한 번 띄워 쳐서 멋지게 붙이려는 욕심이 든다. 샌드(로브) 웨지를 들고 높이 띄운다는 것이 제대로 맞지 않아 볼은 10m 나가는데 그친다. 마지막 순간 충동으로 1타를 잃어버리는 경우다.
▲긴 클럽이냐 짧은 클럽이냐
두 클럽 사이에서 망설여질 땐 긴 클럽을 잡는 타입이다. 파3홀에서 티샷할 때에도, 페어웨이에서 어프로치샷을 할 때에도 클럽을 낙낙하게 선택하는 편이다. 그런데 홀까지 115m를 남긴 지금은 라이도 좋은데다 동반자들이 곁에서 보고 있어서 짧은 클럽인 9번아이언을 달라고 외친다. ‘짧은 클럽을 잡았다’는 생각에 힘이 들어가고 스윙 플레인이 흐트러지면서 샷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볼 윗 부분을 때려 그린을 훌쩍 넘겨버리는 일도 많다. 실수를 자초한 것이다.
▲임시변통보다 ‘루틴’ 중시하길
퍼트든 드라이버샷이든 하나의 샷을 하더라도 골퍼 나름대로의 ‘루틴’(샷을 하기전 일관되게 반복하는 과정)이 있다. 타이거 우즈나 교습가 데이브 펠츠는 “긴장된 순간일수록 루틴을 지키는 것이 실수를 막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평소의 루틴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해보고자하는 것은 충동 때문이다. 충동·즉흥은 평상에서 일탈했다는 방증이다. 골프는 ‘하던대로’ 하는 것이 실수를 최소화하는 길이다. 갑작스런 변화는 ‘하이 스코어’로 귀결되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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