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우택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경색된 남북관계를 러시아의 가스 열기로 녹일 수 있다는 기대가 부풀어 오르고 있다. 지난달 24일 열린 북·러 정상회담을 전후해 본격적으로 흘러나온 가스관 프로젝트 관련 소식은 여러 곳에서 환영을 받고 있다. 러시아 외무장관은 8월초 한·러 외무장관 회담에서 자신들이 가스관 사업을 성사시킬 것이라고 장담하였다고 한다. 북한은 논평을 통해 러시아와의 공동인식 아래 실무그룹을 조직·운영하는 방향으로 상호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나라당 전·현직 대표들은 기대에 찬 눈빛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가스관 사업이 남·북·러 모두에게 이득이 되며, 한번 설치되면 쉽게 끊기 어렵다고 피력하고 있다.
가스관 연결 사업은 러시아를 매개로 한 또 하나의 남북경협사업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희망어린 분석들에 따르면 러시아는 자원을 파는 동시에 한반도에 새로운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고, 북한은 1억5000여만 달러의 통과료를 얻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한반도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 지는 것으로 기대를 한다.
그러나 이 사업을 기대치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의문부호를 집어넣어야 할 부분은 남·북한 간의 경제사업이 정치적 영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남북관계 역사에는 정치가 경제의 상위에 있는 증거들이 너무나 많다. 가깝게는 북한이 지난 달 22일 금강산지구내 남측 기업의 재산권에 대한 법적 처분을 단행한다며 일방적인 조치를 취한 사건이 있다. 또한 남한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대한 제재로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간 교류협력 사업을 중단시키기도 하였다.
이렇게 남북관계에서 정치가 경제보다 상위를 차지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남과 북이 서로에게 안보위협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북한이 개방을 통한 개혁을 하지 못하는 이유도 외부 정보의 유입으로 인한 정권의 존립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남북경제 사업으로 혜택을 입는 남·북한의 수혜자들이 각기 그들 정부의 정책을 변화시키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북한주민들은 물론이고 북한의 지배계층도 위로 향하는 압력을 행사할 수 없다.
더구나 북한의 엘리트는 남북 경제관계로 인한 이득이 없어진다 해도 다른 형태의 이득을 구할 수 있기에 단지 불편할 뿐이다. 상향식 압력이 행사될 수 있는 남한의 경우도 대다수의 국민정서는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이 안보를 위협하는 사건과 경제문제를 분리하자는 주장을 옹호하질 않는다.
아마도 가스관 연결의 마무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정작 가스의 통과는 언제든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현실적으로 러시아는 이러한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만약 러시아가 북한의 주요 군사물자를 제공한다면 북한을 통제할 수 있지만, 가스의 원활한 통과를 위해 러시아가 그러한 통제수단을 갖는 것은 우리가 바라지 않는다.
얼마전 북한의 대남 매체는 “금강산 국제관광 특구는 우리 주권이 행사되는 지역으로 지구 내 재산은 우리 법에 따라 처리하면 되는 것이지 구태여 남측과 토의할 필요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똑같은 구실로 자신의 영토를 지나는 가스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에서 북한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드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며, 행여나 그들이 우리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되는 경우는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북한은 가스관을 막아 우리를 통제할 수 있지만, 북한의 영토를 통과하는 가스관을 우리가 막아 북한을 통제할 수는 없다. 기대하는 바가 너무 큰 탓에 꼼꼼히 따져봐야 할 문제를 소홀히 취급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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