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주경제 김나현 기자) 바흐만, 한트케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몰락하는 자’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78번)을 통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절망, 고통, 파멸, 죽음이라는 테마에 천착했고 쇼펜하우어와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베른하르트는 생전에 카프카와 자주 비견됐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베케트를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몰락하는 자’는 실존 인물인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를 등장시키며 출간 당시 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글렌 굴드라는 천재와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파멸해가는 베르트하이머라는 인물이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의 이유를 찾는 과정이 작품 전체에 걸쳐 그려진다.
예술의 절대성과 완벽성에 대한 주인공의 강박관념을 잘 드러낸 이 작품은 ‘벌목’ ‘옛 거장들’과 함께 베른하르트의 예술 3부작으로도 불리며 유럽 최고의 문학상 중 하나인 프레미오 몬델로 상(1983)을 받았다.
이 책은 이야기보다는 1인칭 화자의 회상과 성찰이 중심을 이룬다. 챕터 구분도 단락 구분도 없이 의식의 흐름 기법을 차용했고, 이것은 베른하르트의 특징인 장광설의 문체와 어우러지며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베른하르트의 작품에서는 특별한 사건 전개가 없고 (남자) 주인공이 주로 내적 독백을 통해 고립된 자아의 고통을 이야기하면서도 그것만을 유일한 생존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양면적 태도를 보이는데, ‘몰락하는 자’의 주인공 베르트하이머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보여준다.
글렌 굴드라는 천재 피아니스트와의 만남을 통해 서서히 파멸해가면서도 불행이 자신을 떠나는 것을 걱정하는 베르트하이머, 그의 죽음의 과정을 회상하고 성찰하며 ‘몰락’하지 않고 살아남은 ‘나’, ‘몰락하는 자’는 이 둘을 통해 글렌 굴드라는 이상적 예술 앞에서 끊임없이 좌절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절망에 빠져 끊임없이 몰락하는 인간을 위한 한 편의 진혼곡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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