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경제부가 이날 내놓은 매뉴얼에 따르면 정부는 전력예비력 규모에 따라 준비, 관심(블루), 주의(옐로), 경계(오렌지), 심각(레드) 등 단계별로 각종 대응조치를 실행한다.
가장 낮은 위기 대응 단계는 예비력이 400만-500만㎾ 일 때의 ‘준비’다.
정부는 이 때 전력수급대책 기구의 구성과 운영 준비에 들어간다. 발전기별로 공급가능용량을 검토하고 기동시 장시간 소요되는 발전기 상태를 파악하기도 한다.
계획 중인 발전 정지 및 시운전 발전기의 시험일정을 조정하는 것으로 공급능력을 확보하는 일도 준비 단계에 포함된 실천대책이다.
정부는 300만-400만㎾인 ‘관심’ 단계부터 안테나를 바짝 세운다. 400만㎾를 안정적인 ‘범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정도는 예비전력으로 확보해 둬야 자연재해 등 각종 급변 사태에도 대란 없이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이 관심 단계 때부터 정부는 전력수급대책 기구를 구성, 운영한다. 구역전기사업자 등 평소에는 강제 동원하지 않는 발전사업자들의 발전역량을 동원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동원 가능한 발전기를 가동하게 된다.
200만-300만㎾의 주의 단계는 문자 그대로 주의를 표시하는 ‘노란색’ 경보등이다.
이날 전력거래소와 한전이 오후 3시를 기해 실시한 자율절전이 이 단계의 실행조치다. 전기품질을 유지하는 범위 내에서 전압도 2.5% 낮추게 한다. 계획 정지중인 발전기의 복구 가동을 지시하거나 휴전 등의 시행을 중지하도록 할 수도 있다.
이날 전력거래소와 한전은 전력예비력이 안정 유지수준인 400만㎾ 이하로 떨어지자 95만㎾분을 확보키 위해 자율절전을 단행했다.
그 다음 단계는 100만-200만㎾의 ‘경계’다. 이 때에는 직접부하제어를 할 수 있다. 실제 이날 89만㎾의 직접부하제어가 시행됐다.
또 전압을 5.0%까지로 낮출 수 있다.
마지막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는 0-100만㎾의 심각 단계에서는 긴급 부하조정이 시행될 수 있다. 이날 실시된 제한적 송전이 사실상 이 경우에 해당한다고 지경부 관계자는 설명했다.
전력거래소도 이날 보도자료에서 자율절전과 직접부하제어를 시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력예비력을 400만㎾를 넘기지 못해 지역별 순환정전(단전), 즉 제한적 송전 조치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자율절전은 한전과 수용가가 미리 계약을 맺고 수용가가 자율적으로 전력소비를 줄이는 것이며, 직접부하제어는 한전이 미리 계약을 맺은 수용가의 전력공급을 줄이는 것이다.
지역별 순환정전은 이들 두 가지 조치로 예비력 400만㎾가 유지되지 않을 경우 시행하는데 전국적인 제한 송전을 의미하는 이런 조치를 단행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이런 가운데 강제 부하차단이 예고없이 진행된 것과 관련해 정부의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했는지도 관심사다.
정부는 10만-1000만㎾의 부하차단 계획량에 따라 37개 부하조정 단계 조치를 할 수 있게 매뉴얼을 작성해 놨다.
차단 순위는 일반주택-경공업-기타 중요고객 순이다.
지경부는 이날 조정 대상에서 1순위로 꼽는 일반주택, 저층아파트, 서비스업, 소규모 상업용 상가에 대해 예고없이 단전을 단행했다. 이들 대상은 상대적으로 예고없이 이처럼 부하조정을 하더라도 피해가 적은 선로라는 판단에서 그렇게 분류했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또 고층아파트, 상업업무, 경공업 공단 등은 2순위 조정 대상으로서 1-2시간 예고 후에 부하조정에 들어가게 돼있다. 그러나 이 대상들도 이날 매뉴얼과는 달리 예고없이 단전되면서 당사자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상가 이외 핵심 산업시설 등 중요고객 선로는 3순위로 하루 전에 예고하고 부하조정에 나서야 한다. 여기서 제외되는 곳들은 행정관서, 중요 군부대, 통신·언론기관, 금융기관, 종합병원, 중요 연구기관 등이다. 이들 대상이 제외되는 것은 1시간 정전시 국민생활에 많은 피해를 야기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전국 곳곳의 피해상황을 미뤄볼 때 한전 등 전력공급당국이 각 지역 판단에 따라 정전 조치를 매뉴얼과는 관계없이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사상 초유의 전국 단위 제한 송전 조치를 하면서 탄력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가 있을 수 있고, 반대로 매뉴얼과는 무관하게 무차별로 행동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은행과 같은 금융기관들의 업무차질 피해 등이 다수 접수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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