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대형 회계법인은 공공연하게 저축은행 감사 거부를 선언하고 나섰다.
대형 회계법인들이 손을 떼면 갈 곳을 못 찾는 저축은행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외부감사 대상 저축은행 중 거의 절반이 ‘빅4’ 회계법인 등 대형법인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0년 회계결산을 위해 지난해 저축은행과 회계법인이 자율적으로 감사 계약을 맺은 자유수임 건수는 모두 84건이다. 이 중에서 빅4 회계법인의 비중은 41.7%(35건)다.
저축은행 감사를 꺼리는 곳은 대형법인뿐만이 아니다. 일부 회계법인이 저축은행 비리 사건에 연루돼 곤욕을 치르는 것을 목격하면서 대부분의 회계법인들이 저축은행을 기피하고 있다.
회계법인들은 저축은행 자산의 실체 확인이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그만큼 회계 조작이 쉽고, 조작의 유혹도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임료도 제조업이나 다른 금융업종에 비해 낮은 편이다. 저축은행 비리 사건 때는 회계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이 검찰의 철퇴를 맞기도 했다.
6월 결산법인인 저축은행은 10월 말까지 회계법인을 지정해 회계감사 계약을 맺어야 한다.
계약 만료 기간이 당장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회계법인들은 계약 연장에 대해 부정적이다.
서울 소재 한 저축은행 회계담당자는 “격세지감을 느낀다. 몇년 전만 해도 계약시즌이 되면 감사 계약을 맺자고 계속 찾아오던 회계법인들이 이제는 오히려 등을 돌리고 있다. 계약을 연장하려면 수임료를 올려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는 회계법인도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으로서는 다른 방법이 있기는 하다. 금감원이 미계약 감사대상기업을 위해 회계법인을 임의로 지정하는 지정수임 제도를 활용하면 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지정수임은 자유수임보다 수임료가 비싸다. 저축은행으로서는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수임료는 양자 간 협상으로 결정되는데, 감사 투입 인력과 시간이 수임료를 정하는 주요 기준이다. 자유수임에 실패한 지정 기업은 대부분 리스크가 큰 경우다. 더 많은 인력과 시간을 투입해서 꼼꼼하게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에 수임료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지정수임 제도가 있는 한 회계대란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회계법인이 의도적으로 회계감사를 거부하는 사례가 있는 지 예의 주시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 회계감독국 관계자는 “회계법인들이 저축은행 감사를 꺼린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듣고 있었다. 다만, 회계법인 입장에서 지정감사는 자유감사 때보다 오히려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 지정감사를 해서 회계분식 등을 적발하지 못할 때는 자유수임 때보다 더 엄중한 조치를 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합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