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더블딥(이중 침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아시아 등 신흥시장의 통화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 외환시장도 큰 폭으로 출렁이는 가운데 지난 23일 원ㆍ달러 환율은 1200원선 턱밑까지 치솟았다.
25일 전문가들은 “정부가 외환 시장에 개입하는 데 있어 효과를 극대화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한ㆍ미 통화스와프 체결 등을 통해 보다 견고한 외환 방어막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국내 경제, 대외여건에 취약…외화유동성 우려도 불거져
환율이 연일 고공행진을 하는 배경에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재정위기, 미국 등 선진국의 경기침체로 인한 글로벌 경기둔화 등이 꼽힌다.
이에 안전자산인 달러화를 찾는 손길이 바빠지면서, 국내의 외국인 투자자금이 빠져나가는 탓에 원화값이 추락하고 있는 것.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가장 큰 문제는 국내에 투자했던 유럽 쪽 투자자들의 달러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는 것”이라며 “유동성이 풍부한 한국 시장에서, 어떤 수단이든 써서 달러를 끌어모으는 회수 전략이 시작되면서 변동성이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유럽 재정위기의 여파로 유럽의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신용경색이 나타나고 있다”며 “여기에 대외의존도 높은 국내 경제 구조상 환율이 요동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우리나라의 경우 주력 수출 상품이 자동차, IT등 경기에 민감한 제품인 데다 외환 시장 규모가 작고, 국내에 투자하는 외국인 자금 규모가 많아 충격이 왔을 때 빠져나갈 수 있는 규모도 그만큼 크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는 이같은 환율 급등으로 국내 외화유동성 상황에 대한 우려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직까지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나,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더 악화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외국에서 우리나라 은행의 외화유동성에 대해 불안하게 보고 있다”며 “특히 현재의 위기가 몇 개월 간 더 지속될 경우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고 말했다.
김정식 연세대 교수는 “8월 무역수지 규모가 8억달러로 급감하면서 19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이것은 곧 경상수지가 적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라며 “이는 수출을 통한 외환공급이 그만큼 충분치 않다는 뜻인 데다, 여기에 단기 외화차입금의 만기 도래로 매달 갚아야 하는 채무가 겹쳐져서 외환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이어 “국내의 외국인 채권투자의 경우 장기가 많아 환율이 올라가도 환차손이 많지 않다고 할 수는 있겠으나, 환율 급등세가 지속될 경우 채권 투자자금도 이탈할 수밖에 없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 '한·미 통화스와프로 외환시장 보호 필요
단기 자금이 빠져나가고 환율이 급등하자, 당국은 몇 차례에 걸쳐 구두 개입 및 물량 공세로 방어에 나섰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이 올 때마다 당국의 지속적인 개입으로 외환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정부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러한 상황에 대비해 국내 외환시장 규제를 단계적으로 도입,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시스템을 마련해왔다.
이에 따라 시행된 ‘3종 세트’가 바로 ▲선물환포지션한도 제한 ▲외국인채권투자 과세환원 ▲외환건전성부담금 제도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정부의 대책에 대해 “적절한 조치이며 어느 정도 효과를 보고 있다고 본다”면서 “보다 견고한 안정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한ㆍ미 통화 스와프 체결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한 외환보유액의 경우 현 수준이 적당하긴 하나, 중장기적으로는 좀더 늘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 연구위원은 “지금 정부는 정석플레이를 하고 있다”며 “일반 정부는 상황에 따라 외환건전성부담금 제도의 수수료를 높이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한편 통화스와프 제도를 활용해 외환 방어막을 견고히 쌓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정부가 도입한 외환시장 규제는 결국 들어오는 자금을 막아 유사 시 빠져나가는 돈의 규모를 줄이자는 목적이었다”며 “덕분에 단기외채가 다소 줄어든 측면이 있으므로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자금이 워낙 많아 대거 이탈 시 충격이 불가피하다”며 “정부의 개입은 결국 외환보유고를 소모하는 것이므로 개입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이 필요한데 한ㆍ미 통화스와프 체결이 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더불어 “최근 사태가 외환보유액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시켜 준 계기가 됐다”며 “외환보유액도 중장기적으로 늘려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 교수 또한 미국과의 통화스와프 체결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현재 영국과 독일, 일본 등과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와 맺고 있는 통화스와프는 금액 규모와 상관없이 연준의 보호 아래 들어간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므로, 지금과 같은 외환시장의 파고를 피하려면 이를 체결하는 것이 답”이라며 “실제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우리나라가 외화유동성 위기를 극복한 주요 원인이 스와프 체결이었음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국내 금융시장은 금리와 성장률이 다른 국가들보다 높아 외국인 자금이 많이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하지만 정부 개입은 속도는 조절할 수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 해결책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한 주간 당국이 환율 방어를 위해 쏟아부은 물량은 약 35~40억 달러로 추정됐다.
외환보유액 규모는 8월말 현재 3121억9000만달러로, 일본 등과의 통화스와프를 합치면 약 3500억 달러 수준이다. 아직까지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실탄 소진율도 빨라질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일본과 중국의 경우 외환보유고가 넉넉해 외환시장 불안이 적다”며 “비용이 많이 든다고 확충을 꺼릴 것이 아니라 5000억 달러 수준을 보유해 안정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 상황을 타개하려면 수출을 독려해 경상수지 흑자를 도모하는 한편 은행의 외화차입을 좀더 강하게 규제해야 한다”며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 가속화될 경우 한ㆍ미 스와프라인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당국은 아직까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금은 2008년과 달리 경상수지와 실업률 국가채무비중 등 여러 지표에서 우리 경제의 체질이 강화됐고 외환보유액도 충분하다”며 통화스와프 체결을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 "위기, 당분간 지속된다"
전문가들은 당장 유로존 위기 등에 대한 구체적 해법이 없는 상태이므로, 당분간 변동성 장세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직접적 요인이 국내 펀더멘털보다는 대외 여건에 따른 것이므로, 외환당국은 일단 외국인 자금 이탈 동향을 주시하며 현 상황의 추가 대책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전 교수는 “현 상황은 대외적 난국 속에서 외환시장이 적정선을 찾아가는 과도기일 수 있다”며 “환율은 좀더 두고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연구위원은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상황과 미국에서 추가적인 대책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상황 전개가 달려있다”며 “우선 정부는 환율이 1300원선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시장의 흐름에 맡긴 채 구두 계획 및 신뢰유지에 힘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어 “현재 유럽계 자금이 많이 빠져나갔으므로 당분간 큰 자금 이탈은 없을 것”이라며 “정부는 섣불리 외환보유고를 사용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 연구위원은 “대외적 불안요인이 상당히 유동적이라 전망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다만 현재 주식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는 외국인 자금 이탈이 채권시장과 은행 차입금 쪽으로 번지면 크게 우려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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