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웨이전 조자룡 전문가 인터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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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자룡 사당에서 만난 우웨이전(武威振) 허베이성 조자룡문화연구회 부비서장이 취재진에게 조자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아주경제 배인선 김현철 기자) “한국의 한 김치 전문가가 나보다 조자룡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게 부끄러웠다.”
우웨이전 허베이(河北)성 조자룡문화연구회 부비서장은 조자룡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지난 1996년 중국을 방문한 한국의 한 김치 전문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 부비서장은 “당시 그 김치전문가는 ‘삼국지연의를 세 번이나 읽었다’고 말하면서 ‘조자룡을 배출한 정딩은 위대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국인으로써 삼국지연의를 한 번 밖에 안 읽은 사실이 외국인 앞에서 부끄러웠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조자룡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는 “조자룡은 우리 정딩현의 ‘명함’과도 같다”며 “정딩현 사람들은 조자룡의 고향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깊은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우웨이전 허베이(河北)성 조자룡문화연구회 부비서장은 조자룡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지난 1996년 중국을 방문한 한국의 한 김치 전문가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 부비서장은 “당시 그 김치전문가는 ‘삼국지연의를 세 번이나 읽었다’고 말하면서 ‘조자룡을 배출한 정딩은 위대하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국인으로써 삼국지연의를 한 번 밖에 안 읽은 사실이 외국인 앞에서 부끄러웠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조자룡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는 “조자룡은 우리 정딩현의 ‘명함’과도 같다”며 “정딩현 사람들은 조자룡의 고향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깊은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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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운묘(趙雲廟)’라 불리는 조자룡 사당 앞에서 있는 조자룡 동상 뒤로 조자룡이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상산전고(常山戰鼓)’ 민속공연팀이 공연하고 있다. 힘차게 말과 함께 달리는 조자룡 동상만큼이나 뒤의 특별 공연팀의 동작도 역동적이다. |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처럼 조자룡에 이렇게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실제로 이 곳 사람들은 “삼국지 인물 중 누가 가장 좋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많은 사람들이 “조자룡”이라고 답했다.
우 부비서장은 “당시 삼국지연의가 쓰여진 시대적 배경 아래에서 조자룡은 병가와 유가의 덕목인 용맹함과 충의를 모두 겸비한 흠 잡을 데 없는 완전무결한 인물로 그려졌다”며 “그것이 바로 중국인이 조자룡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자룡에 대한 재미있는 전설도 중국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우 부비서장은 전했다.
우 부비서장은 지난 8월 중순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진핑산(錦屛山)에 있는 조자룡 묘에 다녀왔다며 그곳에서 들은 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진핑산에는 본래부터 뱀이 많은데 이 뱀들이 조자룡의 묘를 수호함으로써 도굴꾼의 침입을 막을 수 있었다”며 “또 문화대혁명 때에는 홍위병들이 조자룡 묘를 파헤치려 했으나 사흘 내내 비가 오는 바람에 결국은 그만두었다는 전설도 있다”고 말했다. 덕분에 조자룡 묘는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보존될 수 있었다는 것.
한편 지난 해 조자룡 고향을 둘러 싸고 허베이성 정딩현과 린청(臨城)현이 맞붙은 것에 대해 우 부비서장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는 “린청현이 조자룡의 이름을 빌려 유명세를 타기 위해 조작한 거짓말”이라며 “삼국지에 명명백백히 조자룡은 정딩현에서 태어났다고 나와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우 비서장은 “조자룡은 중국 역사 상 충(忠)과 의(義)를 실현한 우리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롤 모델”이라며 “조자룡의 충의 정신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 날 사람들이 재해주민을 위해 기부를 하고, 대가 없이 자원봉사를 하는 이 모든 활동은 모두 이러한 충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며 그는 인터뷰를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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