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경수 기자) 황금 시즌에 남녀 프로골프대회가 동시에 열려 팬들을 즐겁게 했다. 신한동해오픈과 대우증권클래식에는 미국 투어에서 활약하는 정상급 선수들이 출전,수준높은 기량을 선보였다.
단 한 가지.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 갤러리 ‘관전 문화’다. 요즘엔 휴대폰에 카메라 기능까지 있어 예전보다 더 소란스럽다.
갤러리들이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마음은 이해한다. 그러나 그것이 선수들의 샷을 방해하고 리듬을 깰 정도라면 본말이 전도돼도 한참 바뀌었다는 생각이다.
인천 송도의 잭 니클라우스GC에서 열린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한 최경주는 첫날부터 갤러리들이 찍어대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 신경이 쓰여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1년 전만 해도 그는 “갤러리들의 소음을 이기는 것도 선수의 능력”이라고 말했지만 올해는 딴판으로 대답했다. “미국에서도 대회에 휴대폰을 가져오게 하는 추세입니다. 그러나 미국 휴대폰은 셔터 소리가 안들리지요. 한국 휴대폰은 아마 법적으로 셔터 소리를 내게 돼있는 모양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셔터를 눌러대 리듬이 많이 끊겼습니다.”
최경주는 2라운드 17번홀(파3)에서 퍼트하기 전 두번이나 어드레스를 풀었다. 한 번은 강풍때문에 볼이 움직일까봐 그랬지만, 두번째는 갤러리 셔터 소리때문이었다. 그는 “셔터 소리를 많이 듣다보니 어드레스에 들어가면 불안하다. 그래서 소리가 나기 전에 얼른 스윙을 해치우자는 생각때문에 서둘러 스윙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볼이 엉뚱한 곳으로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 2라운드 1번홀(10번째홀)에서도 티샷이 오른쪽으로 밀려 카트도로쪽 러프로 날아갔다.
갤러리들이 운집한 2일 최종라운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강성훈이 2번홀(파4)에서 티샷하기 전에 ‘띵’하는 휴대폰 소리가 들려 어드레스를 풀어야 했다. 그의 티샷은 오른쪽 벙커에 빠졌고 결국 보기를 했다. 같은 조의 노승열이 그 홀에서 퍼트하기 전에 한 갤러리의 휴대폰 수신음이 들렸다. 노승열은 무시하고 ‘루틴’을 계속했다. 4번홀(파4)에서는 노승열이 티샷하려고 하는데 그 옆 15m 떨어진 곳에서 한 갤러리가 제법 큰 소리로 통화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이 제지하는데도 그 갤러리는 소리를 낮춰 통화를 계속했다.
이번 대회 뿐 아니다. 그동안 한국에 온 세계적 선수들은 처음에는 ‘조용히 해달라’며 캐디와 함께 제지하기도 하지만, 어느순간에 포기하고 소란속에서 샷을 한다. 로라 데이비스, 캐리 웹, 어니 엘스, 존 데일리, 이안 폴터 등 숱한 선수들이 그랬다. 대부분 선수들은 ‘한국 갤러리들은 그러려니’하고 생각하고 플레이를 한다.
그러나 개중에는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선수도 있다. 2002년 한국오픈에 출전한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대표적이다. 그는 한양CC 9번홀에서 티샷을 준비하다가 뒤쪽 갤러리가 사진을 찍으려하자 하던 동작을 멈추고 그 갤러리한테 가 클럽으로 치려는 시늉까지 했다. 하마터면 큰 일날뻔한 일이었다. 다행히 가르시아가 ‘스윙’을 중도에 멈췄기 때문에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으나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조마조마할 정도였다.
한국 남녀골퍼들이 세계 무대에서 이름을 떨치는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갤러리 소란 속에서도 샷을 하는 능력’이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뛰어난 것도 그 중 하나라는 말도 성립할 법하다. 국내 대회에서 하도 익숙해 있으니 해외에 나가서도 웬만한 소란에는 눈하나 깜짝 안하고 샷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역설도 한참 역설이다. 한국골프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양돼야 할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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