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의 물가안정 기능 약화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김중수 한은 총재의 발언에서 근거를 찾고 있다.
김 총재는 최근 "한은은 물가 관리청이 아니다"며 "장기적인 기대 인플레를 낮추는 것이 한은의 목표가 돼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부가 소비자물가지수 산정 품목을 대거 손질한 것도 한은의 물가안정 기능이 축소되고 있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통계청은 금반지 등 소비재라고 보기 어려운 일부 품목을 지수 산정에서 제외하고 채소나 축산물 등 가격변동이 심한 품목의 가중치를 조정하는 방향으로 지수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또 근원물가를 산정할 때도 가격변동이 심한 농산물과 석유류 외에 식료품과 에너지를 추가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지수개편 작업이 끝나면 최근 물가대란을 주도했던 금반지와 채소류 등의 영향력이 없어지거나 크게 줄어 전체 소비자물가가 낮아지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이와 함께 일부 언론에서는 한은이 물가안정 목표치를 전제로 금리정책을 펴는 인플레이션 타깃팅(inflation targeting) 정책을 부분 손질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한은이 현재 3년의 중기 물가안정 목표 기간을 정해 놓고 해왔던 목표 물가 관리를 내년 중 정부와 협의해 폐지할 계획이라는 내용이다.
이같은 보도가 나간 후 한은은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부 정책조차 통계 개편을 통해 물가관리의 실패를 회피하려 한다는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또 정부가 추진 중인 물가 통계 계산 방식 변경과 더불어 금반지와 같이 가격상승 품목을 빼고 수입차 같이 가격하락 예상 품목이 들어가면 현재의 체감 물가와 수치는 급격한 괴리가 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이같은 방식이 도입되면 물가를 잡으려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부담이 적어져 한은의 물가안정 의지도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를 전제로 이지현 한화증권 연구원은 “물가지수가 대외 경제 상황 및 대미 환율 등에 급격하게 영향을 받는 상황에서 한국은행마저 인플레이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약화시킨다면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추겠다는 목표 수행도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물가 산정 방식의 변화는 물가 수준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돼 단기적으로 채권시장에 호재가 될 수 있지만 장기 저금리 유지로 인플레 압박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또 지수 전환에 따른 물가 수준 저평가 인식 정도가 약화되면 중장기 금리가 오르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시각의 차이가 있겠지만 정부가 소비자물가 산정 기준을 현실화하는 것은 통계의 왜곡이 아닌 물가의 정확한 반영”이라고 언급했다.
안 위원은 물가목표제에 대해서도 “한은법에 따라 한은이 물가안정 기능이 수반된 제도를 쉽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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