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 신용등급 전망이 등급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국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재정 위기로 역내 국가들의 신용등급과 전망이 잇따라 하향 조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유로존의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이 상향 조정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 뉴욕시장 한국물 아직 영향 없어 피치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올렸다는 소식에도 국제 금융시장의 중심인 뉴욕에서 거래되는 한국물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에 따르면 이날 오전 현재 한국 국채를 포함한 한국 금융자산의 가격은 오히려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 관계자는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상향 조정했지만, 한국의 국가 신용도를 반영한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확대되고 있고 국채를 비롯한 산업·수출입·기업은행 등 국책 은행과 시중 은행의 채권 가격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그리스 위기가 한고비를 넘겼음에도 이탈리아 등 유럽의 재정위기 여파가 계속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아시아권 전체가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어 한국 금융자산의 가격도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 중 규모가 가장 작은 피치의 신용등급 전망 조정이어서 세계 경제의 큰 흐름을 바꿀만큼 영향력이 있는 호재는 아니라는 분석이다.
◇ 韓 신용등급 업그레이드에 호재 그러나 한은 관계자는 “무디스 등 다른 국제 신용평가사들의 한국 관련 발언을 고려할 때 피치의 조치가 장기적으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 호재로 작용할 소지는 상당히 크다”고 전망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무디스 등 다른 국제 신용평가사는 피치의 발표와 관련해 아직까지 공식적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이전에도 유럽의 재정위기와 세계 경제의 더블딥(이중 침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피치의 신용등급 전망 상향 조정은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평가사마다 분석 방법이 다르고 독특한 정책이 있기 때문에 피치의 평가가 다른 신평사에 바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단하기 힘들지만, 완전하게 다른 방향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는 드물다는 게 뉴욕 금융시장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국제 신용평가사들이 유럽의 위기 이후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하는 데 인색했다는 점은 긍정적인 영향의 가능성을 더욱 크게하고 있다.
피치만 하더라도 올해 A 등급 이상 국가 중 등급을 상향한 곳은 칠레(2월)와 에스토니아(7월) 등 2차례뿐이고 벨기에,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슬로베니아, 뉴질랜드, 바레인 등의 신용등급을 내렸다.
피치가 한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올림에 따라 3대 신용평가사들 중 가장 먼저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릴 기관은 피치로 예상된다.
뉴욕의 금융 전문가는 “통상 신용등급 전망 조정은 1년 안에 등급 자체에 반영되고 다른 신용평가사의 평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해 앞으로 큰 변화가 없다면 피치가 1년 내에 한국의 신용등급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또 다른 신용평가사들도 시차를 두고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일 것으로 전망된다.
무디스의 톰 번 아시아·중동 부사장은 지난 9월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 강연에서 한국 국가 신용등급 상향 조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번 부사장은 당시 “한국과 신용등급이 비슷한 국가들과 비교할 때 한국 정부의 재정이 튼튼하고 지정학적 위험도 완화되고 있다”면서 “이런 추세가 지속한다면 현재 A1인 한국의 신용등급이 한 단계 높은 Aa로 상향 조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는 유럽 위기가 고조되면서 한국에서 유럽계 자금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S&P도 지난달 한국을 방문해 한국 경제를 점검하면서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 경제 상황 때문에 한국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될 일은 없다면서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음을 보였다.
피터 황 메릴린치 선임 부사장은 “피치는 유럽계이고 3대 신용평가사 중 규모가 작아서 무디스나 S&P에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지만, 3대 신용평가사 중 한 곳이라도 전망을 상향 조정했다는 것은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상향에 좋은 징후(good sign)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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