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은 내 삶의 구슬꿰기…‘O-80프로젝트’ 준비중”

  •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인터뷰

이어령 전 장관은 팔순을 맞는 내년은 50년 저술인생을 총정리하는 '내 삶의 구슬꿰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남궁진웅 기자>
(아주경제 윤용환 기자) 오는 14일부터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제3회 한중일 문화 국제심포지엄을 준비에 한창인 이어령(79) 전 문화부 장관을 중구 서소문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검은 머리에 팽팽한 피부까지 내년 팔순을 앞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여전히 정정하다. 낭랑한 목소리로 1시간여 진행된 인터뷰 동안 전혀 지친 기색이 없다. 이 전 장관은 한중일문화비교연구소 이사장 명함뿐 만아니라 다양한 직함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집필과 연구, 그리고 강연으로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다른 이야기보다 먼저 이렇게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 특별한 건강비결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많이들 내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고 하는데, 비결이라면 ‘몰두’하는 것 입니다. 시간의 신은 한눈팔고 권태감을 느끼거나, 무의미한 삶을 살 때 인간을 늙고 나약하게 만들지요. 지금은 많이 바뀌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조로증이라고 해서 50대만 되도 노인행세를 하려고 합니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다보니 시간이 잠시 내게서 멈춘 것처럼 느껴지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어디 내 맘대로 되나요. 지금은 기억력도 떨어지고 계단 오르는데 숨도 가빠지는 등 기력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창조적인 일에 몰두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일은 몰라도 지적작업은 팔순까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 오는 14일부터 제3회한중일문화 국제심포지엄을 준비하고 있는데 주요 내용은 무엇입니까.
“먼저 제1회 심포지엄부터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후원해 준 아주경제에 감사 드립니다. 동북아시아는 대륙의 중국, 반도의 한국, 해양의 일본이 세다리로 버티고 정립하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중국과 일본, 두 나라로만은 동북아시아가 정립할 수 없지요.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열리는 이번 국제심포지엄을 통해 한중일 삼국문화의 동질성과 다양성에 대한 학문적 토대를 만들어 보고자 합니다. 한창 붐을 일으키고 있는 한류문화를 체계적으로 분석해 한중일 삼국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상호보완하고 공유하는 문화로 풀어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특히 중국의 근대화를 이끈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아 서구적 가치가 어떻게 아시아의 정신문화에 영향을 미쳤는지, 또 어떻게 발전됐으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한중일 전문가들이 모여 집중 조명해볼 생각입니다.
심포지엄 그 자체로는 큰 의미가 아닐지 모르지만 이러한 작은 노력들의 성과물이 꾸준히 쌓이다보면 한중일이 하나의 원처럼 누구도 패권 없는 건강한 문화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마치 '가위 바위 보'와 같이 3국이 발전적 순환을 이루는 구조가 될 것 입니다. ”

-6년 전에는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를, 최근에는 생명자본주의(Vita-Capitalism)를 주장하셨는데 현시대를 평가하신다면.
“‘아 적어도 내가 지각은 않고 조금 앞서서 시대를 읽었구나’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 '디지로그'입니다. 당시 디지털이 아날로그와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의 관계로 발전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즘 모바일, 스마트폰 등을 통해 현실화 됐지요. 스티브 잡스나 구글, 페이스북 등 앞선 상상력이 온·오프라인의 벽과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현실과 사이버 세계가 항상 공존합니다. 최근 새롭게 던진 화두는 생명 자본주의입니다. 리먼 브라더스 쇼크이후 전 세계의 금융·산업자본 시스템이 무너져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경제전문가들은 사회주의 소련 붕괴 후 자본주의가 엄청난 발전을 할 줄 알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의 반 월가 점령으로 촉발된 금융자본주의 반대 시위 등 오히려 더 큰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이제 자본주의는 새로운 생명 패러다임으로 바뀌지 않으면 희망이 없습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도 이미 지적했듯이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좋은 제도이지만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에 유리그릇처럼 전체시스템이 한 번에 깨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후대에는 우리가 겪었던 물질적 산업금융시스템에 기초한 자본주의와 달리 평화, 생명, 사랑 이러한 가치가 모든 생산 수단과 목적의 토대가 되는 자본주의를 물려줘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주장하는 생명자본주의입니다."

-앞서 시대를 읽어내는 혜안이 탁월하신데 어떤 방법이 있으신지.
“시대를 읽는 몇 가지 대안이 반드시 알아서 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나의 생각이 적어도 5년, 10년을 앞설 수 있었던 것은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상상력 때문입니다. 50년대 저항문학인 ‘흙속에 저 바람 속에서’는 전통사회에서 어떻게 근대화, 산업화 패러다임으로 바꾸느냐는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그 다음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탈산업화와 이념의 벽을 허물기'에 중점을 뒀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베를린 장벽과 함께 이념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새천년이 시작되면서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캠페인을 주장하면서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새천년 준비 위원장을 맡았을 때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2000년 1월 1일 새벽 0.2초 차이로 처음 태어난 어린이의 울음소리를 전 세계에 영상메시지로 전달해 ‘미래는 물질에서 생명으로’라는 화두를 던졌습니다. 이것이 최근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맞물려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디지로그와 생명자본주의 주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최근 배재대학과 한류문화산업대학원 설립을 위한 MOU를 맺었는데 역할은 무엇인지.
“중국이 베이징올림픽과 상하이 엑스포를 개최하면서 저렇게 대국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을 것입니다. 한중일 비교문화연구소의 역활은 세 나라를 한 블록으로 묶어 연구하고 문화의 동질성과 차이점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입니다. 역사를 뒤쫓아 가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깊이 파고 들어가면 한중일의 미래가 보입니다.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는 최근 배재대학과 한류문화산업대학원’을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했습니다. 내가 명예추진위원장을 맡았습니다. 내년 3월 설립 예정인데 21세기에 맞는 학문의 융·복합을 통해 문화산업을 기획하고 국제합작 전문가를 양성해 볼 생각입니다. 이 기회에 한류열풍도 체계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 한류는 연예부문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이뤄졌지만, 첳학적 배경이나 콘텐츠가 있는 문화교류 전략 등은 전무한 상황입니다. 정부나 민간이 나서서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학계가 나서 연구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한류문화는 이제 아시아를 넘어 이제 미국과 유럽까지 진출했습니다. 지금이 찬스입니다. 체계적인 한류문화 분석을 토대로 넓은 시야의 한류, 함께 공유하는 한류를 만들어가는 시스템을 학계와 서로 보완적 관계로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내년이 팔순인데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내년은 내 삶의 구슬 꿰기요, 내 인생의 한 턴을 이루는 시기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 수확기(Last harvest)로 삼을 계획입니다. 흩어져 있는 책들을 모아 정리할 예정입니다. 평생 큰 구슬은 못 만들었지만 내가 사방에 만들어 놓은 작은 구슬을 꿰면 아주 다양한 삶의 무늬가 만들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내년에 팔순을 맞는 사람들의 삶을 하나로 묶어내는‘O-80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나 개인의 잔치가 아니라 전체의 잔치가 되도록 신문, 방송, 출판, 연극, 영화, 전시 등 다양한 부분에서 진행할 예정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노쇠해서 사람들 사이에서 잊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지 못했던 일들을 조금씩 완성해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내년 팔순은 여태 것 꿈꿔 왔던 것에 대한 수확기입니다. 소박한 꿈이라면 내 이름을 건 창조학교를 새롭게 운영해보고 싶습니다. 관(官)과 함께하다보니 아무래도 제약이 많지요. 월요강좌를 진행하고 있는데 좀더 활성화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 머릿속 지식과 아이디어를 모두 쏟아놓고 싶은 생각입니다. 뒤늦게 공부하고 있는 생명자본주의를 좀 더 체계화하고 싶습니다. 국내외적 네트워크를 통해 자본주의의 새로운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는 결과물은 내놓고 싶습니다.‘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데 저출산, 고령화 사회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하는 세살마을 연구원도 활성화됐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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