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은 2010년 3월 경영복귀시 위기경영을 화두로 던졌다. 당시 경제위기에 대한 인식이 담겼다. 올해 상황도 나아진 게 없다. 일본 대지진에 이어 선진국 재정위기는 되레 심화됐다.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아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않는다면 당장 10년 후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인식이 재계 전체에 깔려 있다.
◆신수종사업을 찾아라
국내기업은 2008년 금융위기에 앞서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다. 먼저 위기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다. 전세계를 엄습하고 있는 선진국 재정위기 역시 국내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다. 실제 국내기업은 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 신수종사업 발굴을 위한 투자를 더욱 확대하고 있다.
최근 내놓은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를 보면 국내 600대 기업은 올해 125조원을 신규 투자할 전망이다. 전년보다 14%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30대 기업을 봐도 마찬가지다.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연구ㆍ개발(R&D) 투자는 올해 26조3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7% 가까이 늘었다. R&D 투자 증가율은 해마다 20%를 넘어서는 추세다.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세계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내기업은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확대나 신수종사업 육성을 통해 악화되는 환경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재계 1위 삼성 역시 최대숙제는 미래 먹거리 찾기다. 삼성은 태양전지ㆍ자동차전지ㆍ발광다이오드(LED)ㆍ바이오제약ㆍ의료기기를 5대 신수종사업으로 선정, 조기안착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해 2020년까지 23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삼성은 컨트롤 타워인 미래전략실을 신설, 신성장동력 발굴뿐 아니라 글로벌 인재확보와 신조직문화 구축에도 역점을 두고 있다. 성장잠재력이 큰 신흥시장 진출을 위한 현지화도 눈에 띈다. 2009년 말에는 아프리카 총괄을 신설, 적극 공략에 나섰다.
현대ㆍ기아차는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차 개발에 앞으로 3년 동안 4조원 이상을 투자한다. 애플이나 삼성전자, LG전자와 제휴를 통한 스마트카 개발도 한창이다.
SK는 신에너지 자원, 스마트 환경 구축, 산업혁신 기술개발을 3대 핵심사업으로 정했다. 여기에 2020년까지 17조5000억원을 쓰기로 했다. LG는 '그린 2020' 전략을 통해 신성장동력 사업을 육성하고 있다. LED 조명, 바이오 시밀러, 자동차용 2차 전지, 태양전지, 능동형 유기발광다이오드(AM OLED), 4세대 이동통신이 대상이다. 2020년까지 20조원이 투입된다.
포스코는 첨단소재를 중심으로 종합소재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신기술 개발에 나섰다. 한화는 태양광산업을 신수종사업으로 선정, 세계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기술 경쟁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불황기 헐값 인수ㆍ합병도 기회
구글이 8월 모토로라를 전격 인수하면서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수년간 침체됐던 인수ㆍ합병(M&A) 시장에서 빅뉴스였다. 당시 미국현지 보도를 보면 올해 하이테크 기업 M&A 규모는 1257억 달러로 2007년 이후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
구글이 모토로라를 인수한 데 이어 프랑스 제약업체 사노피ㆍ아벤티스는 미국 바이오업체 젠자임을 201억 달러에 사들였다. 미국 2위 통신사인 AT&T는 4위 통신사 T모바일을 39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버라이즌을 제치고 최대 통신사로 올라섰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인터넷 영상전화 서비스 업체인 스카이프를 85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세계 M&A 시장은 침체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M&A 규모는 2010년 한 해만 3조 달러, 1만2000여건을 기록했다. 액수만 전년대비 20% 가까이 늘었다. 건수도 7% 이상 증가했다.
국내기업 역시 커지고 있는 M&A 시장에 대한 관심이 적지 않다. 신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M&A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롯데ㆍ포스코ㆍ현대중공업ㆍSK는 2010년 한 해만 인수ㆍ합병을 위한 지분인수에 12조원 이상을 썼다.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에 사활이 달렸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성장잠재력이 큰 기업을 경쟁업체에서 인수했을 때 갖게 되는 부담도 작용하고 있다. M&A는 곧바로 해당업권 지각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국내 대기업이 밝힌 향후 10년간 성장 목표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도 M&A는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재계 관계자는 "세계 경제위기 상황을 감안할 때 M&A 시장 회복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며 "그렇더라도 빨라지는 M&A 시장 변화를 국내기업이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위한 내핍경영은 필수
세계 경제위기는 내년 상반기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 신성장동력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더라도 불요불급한 비용지출은 줄여야 살아남는다. 이런 위기인식은 내년 국내기업 경영계획에도 그대로 담기고 있다.
내년 기업 재무책임자에게 가장 큰 숙제는 재무건전성 강화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사업은 축소 또는 보류하는 보수적인 경영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당초 4세대 롱텀에볼루션(LTE)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예상됐던 통신업계도 마찬가지다. LTE 투자를 제외한 유ㆍ무선 설비투자 계획을 최대한 줄이기로 했다. 올해 들어 통신 기본료가 인하되면서 3분기 실적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가입자당 매출(ARPU) 또한 줄어들었다.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대선 시즌에 예상되는 추가적인 요금인하 압박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기업마다 경쟁적으로 진출했던 태양광 부문 투자도 신중해지고 있다. 국내 1위 태양광업체인 현대중공업은 충북 음성 태양광 공장 증설을 보류하기로 했다. LG화학도 마찬가지다. 태양광 소재로 쓰이는 폴리실리콘 부문 투자를 연기했다.
포스코는 원가절감 목표치를 1조원에서 1조4000억원으로 높였다. 철강시황이 내년 상반기까지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반영됐다. 신세계는 수익성 없는 중국 내 이마트 점포를 매각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사업 구조조정으로 경영효율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내년 정치 일정과 맞물려 반기업 정서나 기업규제가 확산될 수 있다"며 "기업마다 여기에 촉각을 세우면서 내핍경영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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