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 사이프 알-이슬람은 ‘이슬람의 칼’이라는 뜻이다.
1972년생으로 올해 39세인 그는 런던정경대(LSE)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공식적으로는 카다피 정권에서 아무런 직함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정권을 대변하는 인물로 간주됐다.
사이프 알-이슬람은 여러 인질협상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고 리비아 개혁의 설계자로 인식됐다.
그는 2000년 카다피 재단의 대표로 필리핀 이슬람 반군 인질석방 협상을 중재해 인질 석방을 성사시킴으로써 국제사회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7년에는 병원에서 에이즈를 퍼트렸다는 혐의로 투옥된 불가리아 출신 간호사의 석방 중재에도 역할을 했으며 1988년 팬암기 폭파사건(로커비 사건), 1989년 UTA 772기 사건 유족들과의 보상협정 협상도 사이프 알-이슬람이 주도했다.
이 두 사건 모두 리비아가 관여한 것으로 그는 일련의 활약을 통해 리비아와 카다피 정권의 ‘얼굴’이 됐다.
사이프 알-이슬람은 군복 아니면 리비아 전통의상을 고집하는 아버지와 달리 멀끔한 정장 차림에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그의 개혁 이미지는 올 2월 카다피가 리비아 제2도시 벵가지에서 봉기한 반(反) 정부세력을 무력 진압하면서 사라졌는데 그는 TV 출연, 또는 기자회견을 통해 “반정부세력을 분쇄하겠다”는 메시지를 줄기차게 외쳤다.
8월 말 국가과도위원회(NTC)의 혁명군이 수도 트리폴리에 접근하자 사이프 알-이슬람은 잠적했으며 반군에 체포됐다는 보도가 나온 지 이를 뒤 다시 트리폴리에 모습을 드러내 ‘신출귀몰’ 하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 종적이 묘연했던 사이프 알-이슬람은 과도정부가 19일 그의 체포 사실을 발표하고 손에 붕대를 감은 사진이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세상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이프 알-이슬람은 무아마르 카다피, 최고 정보책임자 압둘라 알-세누시와 함께 반 인류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로부터 체포 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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