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미 FTA 제약산업 영향은
2. 연구개발(R&D)로 신성장동력 선점
3. 바이오 의약품 개발·해외 시장 개척
(아주경제 조현미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시행을 앞두고 제약업계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다.
정부의 약값 인하, 리베이트 쌍벌제 시행으로 이미 위축될 대로 위축된 제약산업에 또 하나의 악재가 될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한·미 FTA가 시행되면 대미 무역수지 적자 규모가 커지고, 제네릭 의약품(복제약) 출시가 지연될 것으로 제약업계는 전망한다.
이에 본지는 이러한 제약업계의 현실을 돌파하기 위한 제약사의 전략을 3회에 걸쳐 실는다.
◆ 제약산업 생산 매년 1197억원 감소
정부가 발간한 한·미 FTA 경제적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미 FTA 발효 이후 제약업의 대미 수입은 향후 10년간 연평균 1923만달러 증가하는 반면 수출은 같은 기간 연평균 334만달러 늘어나는 데 그쳐 이 분야의 무역수지 적자가 1590만달러까지 확대된다.
국내 복제약 생산은 발효 이후 10년간 연평균 686억∼1197억원 감소하고, 시장 위축에 따른 소득 감소분은 457억∼797억원으로 추계했다.
제약업계에서는 이보다 손실 규모가 더 클 것으로 전망한다.
한국제약협회는 2007년 자료에서 한·미 FTA 타결로 인한 관세철폐, 특허연장 등의 영향으로 제약업계가 입는 매출 손실 규모가 연간 1400억∼49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국내 제약산업 규모는 2010년을 기준으로 12조8000억원 수준이다.
◆ 허가·특허 연계로 복제약 출시 지연
국내 제약산업에 가장 큰 피해를 줄 한·미 FTA 이행 사항으로는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꼽힌다.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란 특허를 가진 오리지널 신약과 동일한 성분, 효능을 가진 복제약의 허가 신청에 대해 허가 당국이 이 사실을 특허권자에게 통지하는 절차다.
특허권자가 이 사실을 통보 받은 후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면 허가 당국은 복제약의 허가 절차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 사실상 복제약의 허가와 시판이 막히는 것이다.
미국 외에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에서 도입해 시행 중이다.
지금까지 복제약을 출시하는 국내 제약사는 특허권 존속 기간 만료 이전에 허가를 취득하고 만료 이후 즉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미래에 특허의 무효가 확실시되는 경우 기업의 재량에 따라 만료 이전에도 시장에 진입하는 것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FTA가 발효되면 모든 상황은 달라진다. 특허 신약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은 FTA가 발효되면 기존보다 5년가량 늘어난 특허 보호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국내 업계의 관측이다.
국내 제약산업에서 복제약의 비중이 높은 만큼 이로 인한 손실 규모도 크다.
정부는 이 제도가 시행되면 연간 439억~95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한다. 전체 피해 규모의 64~79%에 해당한다.
복제약 허가에 대한 ‘자동유예(automatic stay)기간’을 설정해 이 기간 동안에만 정부가 시판 허가를 내주지 않는 제도가 보안책으로 검토되고 있다.
자동유예기간 도중 특허가 만료되거나 소송에서 특허 무효가 인정되면 복제약 허가 금지는 자동으로 풀린다.
현재 미국이 30개월, 캐나다가 24개월의 자동유예기간 제도를 운영 중이다. 우리 정부는 국내 특허소송에 걸리는 기간을 감안해 12개월을 검토 중이다.
국내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 변리사와 변호사 등은 자유유예 기간을 12개월로 설정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보고 있다.
◆ 다국적사 에버그리닝 남용 우려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국회에서도 우려하는 부분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허가·특허 연계제도에 따라 복제약 출시 제약사는 품목허가 신청시 특허권자의 특허쟁송 제기와 승소 가능성에 대한 부담으로 특허기간이 남아 있는 신약에 대한 복제약 개발 시도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특허권자에게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을 쓸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제약업계의 걱정은 더 크다.
에버그리닝은 기존 등재된 의약품에서 추가적인 효과가 입증되거나 제형의 색, 제조 방법 등을 바꾸면 후속 특허를 추가해 특허기간을 연장하는 제도다. 사실상 특허권자의 독점을 지속시키는 전략으로 인식된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특허권을 지닌 다국적 제약사가 무분별하게 특허를 출원해 복제약의 출시를 지연 시킬 여지가 생긴다.
실제 전세계 판매 1위 의약품인 화이자제약의 고지혈증 치료제인 아토바스타틴의 물질특허가 국내에서는 2007년에 만료됐으나 광학이성질체, 중간체·결정다형 관련 후속 특허들에 의해 2016년까지 특허권이 연장됐다.
전세계 2위 품목인 사노피-아벤티스의 항혈전제 클로피도그렐도 2003년 물질특허 만료 후 광학이성질체, 결정다형, 복합제 등의 후속특허들에 의해 2019년까지 특허가 계속된다.
미국 기업에서 나온 연구 성과물의 특허 권리화 비율을 보면 제약산업은 96%에 이른다. 미국 제약사가 출시한 의약품의 대부분이 특허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특허권을 확보한 미국 제약사가 에버그리닝 전략을 남용할 가능성이 높고, 이로 인한 국내 제약사가 입는 경제적 타격이 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특허 가능 요소를 제한하는 반(反)에버그리닝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호주는 반에버그리닝 전략을 법규로 정해두고 있다. 투기성 에버그리닝 전략을 비롯한 모든 특허에 대한 청구시 호주 연방의약품관리국(TGA)이 의약품 시판 승인을 무기한 저지하는 제도다.
캐나다의 경우 특허 등재 대상 특허를 제한하는 방법으로 에버그리닝의 남용을 막고 있다. 성분과 제제, 제형, 적응증과 관련된 특허를 등재 대상으로 삼고, 후속 특허의 허용범위를 제한적으로 운영한다.
◆ 제약계 “국내 제약산업 고사”
무역 관련 지식재산권에 관한 협정(TRIPs)에 따른 제약산업의 피해도 적지 않다. 이 협정은 1995년에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당시 부속 협정의 하나로 모든 나라가 의약품에 대한 특허를 인정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이 제도에 따라 국내 제약사는 한해 평균 512억~1023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고 정부는 추정했다.
한국제약협회 관계자는 “제약분야는 농업분야와 함께 한·미 FTA의 대표적인 피해산업”이라며 “정부의 약가 인하 제도와 한·미 FTA 발효로 국내 제약산업은 결국 고사하게 될 것”이라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야당에서도 한·미 FTA로 인해 국내 제약산업이 크게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한·미 FTA가 발효되면 지식재산권 등으로 인해 미국의 특허권자가 한국 국민이나 기업에 대한 지적 재산권 단속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돼 비싼 오리지널 약보다 값싸고 효과 좋은 복제약을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는 “의약품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담은 약사법이 개정되면 유럽의 의약품법에도 적용, 특허를 가진 유럽 제약사에도 복제약 생산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우려하며 “이런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확실하게 국익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허가·특허 연계제 등으로 국내 제약업체의 일부 피해가 있을 수 있으나 이 제도를 3년간 유예하는 대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나아가 허가·특허 연계제도를 통한 특허권의 강화는 중·장기적으로 국내 제약사의 신약 개발을 촉진하는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제약업계와 야당 등이 제기하는 우려가 과장됐다는 의견도 있다.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약을 출시하기 전 특허 신약을 지닌 다국적 제약사와 협상을 마치는 것이 관례화 돼있다는 주장이다.
또 일부 제약사들은 앞으로 7∼8년 사이에 특허가 만료되는 블록버스터급 의약품에 대한 복제약 품목 허가를 이미 받아놓은 상태여서 큰 타격은 없을 것이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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