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수산시장 방문을 취임 후 첫 공식 일정으로 잡았던 박 시장은 사상 최초로 온라인 취임식을 열었고, 인터넷 방송을 통해 시정 현황을 시민에게 직접 알리는 등 가히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왔다.
시민의 목소리를 반영해 복지와 안전이라는 시정 과제에 대한 셈법을 구체화하고 있어 그가 의도한 대로 ‘경청행정’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등록금 철폐 투쟁” 등 현장에서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경우도 수차례 있었다. 이 때문에 서울시정이 ‘즉흥행정’으로 향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적잖다.
◇3일에 한번 현장 찾아…‘경청행정’ 강행군=취임 후 29일간 박 시장이 서민이나 저소득층의 민생 현장을 찾은 횟수는 10차례에 달한다. ‘경청’의 자리를 3일에 한 번꼴로 가진 셈이다.
박 시장은 취임 첫날 새벽 대중교통 수단인 택시와 지하철을 이용해 노량진 수산시장을 찾았다.
이전 민선 시장들이 선거 다음날 고급 승용차로 첫 공식일정 장소인 국립현충원으로 향했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민생 현장을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취임 후 첫 주말 서대문독립공원에서 열린 독립민주 페스티벌에 참석했다가 한 시민이 떡볶이를 사달라고 하자 근처 영천시장의 분식집으로 직행했다.
이곳에서 박 시장은 “시장이 시장을 찾는 게 이상한가요”라며 시민과 격의 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16일 열린 온라인 취임식은 그가 보여준 파격 행보의 절정이었다. 업무 공간뿐 아니라 휴게실은 물론이고 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인터넷을 통해 보여줬다.
시정에 관련한 이슈가 터질 때면 곧바로 현장으로 나섰다.
노원구 월계동의 한 도로에서 이상 수치의 방사능이 검출되자 박 시장은 그 주말 해당 장소를 직접 찾아 “시민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은 서울시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한 노숙인이 지하철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을 때에는 그가 안치된 국립중앙의료원을 찾아 조의를 표하고 관련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경청으로 ‘복지’와 ‘안전’ 잡는다=박 시장은 내년도 예산안을 공개하면서 시정 주요 과제를 ‘복지’와 ‘안전’으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후보 시절부터 전임 시장의 대형 토목정책에 반기를 들었고 지난해 우면산사태라는 초대형 참사가 났기에 언뜻 당연하게 보일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그 해법은 여느 전임 시장과 크게 달랐다. 복지·안전과 관련한 첫 시험대라고 할 수 있는 저소득층 월동대책을 내놓으며 시민이 초기 단계에서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상향식’ 정책 수립 모델을 제시했다.
그는 아파트 관리소장과 통장, 풀뿌리 시민단체 대표가 중심이 되는 ‘희망온돌 시민기획위원회’를 만들어 정책의 기본방향을 설정하게 했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동네 미팅 성격의 ‘정책 워크숍’을 열어 주민 의견을 수렴해 정책을 완성하도록 했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청책 워크숍은 복지 분야뿐 아니라 시정 전반에 걸쳐 정책 수립의 기본 방법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의 상향식 정책 수립 방식은 시청 내부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사실상 인수위원회 성격을 띤 희망서울 정책자문위원회 회의에 사무관급 이하 실무 직원이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박 시장의 현장 방문이 구체적인 사업 추진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행사차 서대문독립공원을 찾은 자리에서 한 시민이 독립문 사거리에 횡단보도를 설치해 달라고 민원하자 그는 경찰청과 협의해 횡단보도 2개를 설치할 것을 검토하라고 서울시에 지시했다.
◇넘을 과제는 ‘산 넘어 산’=일단은 연착륙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박원순호(號)이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는 산적하다.
박 시장은 공약한 대로 복지를 확대하는 동시에 임기 3년간 20조원이 넘는 서울시 부채를 큰 폭으로 줄여야 하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게다가 범야권 후보로 당선된 그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안철수 원장과 민주당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도 해야 한다. 내년에는 3월 총선과 12월 대선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어떤 목소리를 내든 ‘시정을 정치화하지 마라’는 한나라당의 공세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벌써 그의 ‘경청행정’이 포퓰리즘의 또 다른 표현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아직 시민운동가의 틀을 벗지 못했다는 지적도 많다.
박 시장은 지난 15일 동국대에서 한 강연에서 “여러분이 어렵게 등록금 인하 투쟁을 해왔는데 (더 나아가) 왜 철폐를 위한 투쟁은 하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서울시립대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이기로 한 상황에서 그가 이같이 발언한 것을 두고 시장의 언동으로는 너무 과격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시청 안팎에서 나왔다.
지난달 말 직원 격려차 서울방재종합센터를 찾은 자리에서는 우면산사태가 일부 ‘인재’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행정 수장이라면 무엇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고 불가능한 것인지를 고려해 말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행정의 안정성의 문제다”면서 “그런데 박 시장은 현장에서 느낀 대로 의견을 피력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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