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미국의 국가신용등급 전망이‘부정적’으로 바뀐 직후 터진 이번 대형 은행들의 신용등급 강등 사태는 심리적 충격 이상으로 앞으로 지속적으로 국제 금융시장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이번에 등급이 내려간 은행들은 앞으로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 자금 조달을 하는 데 있어 더 큰 이자 부담을 해야 하는 등 경영수지가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부동산 거품이 꺼진 이후 수년간 경영 악화를 경험해온 은행들로서는 대단한 악재가 아닐 수 없다. 블룸버그통신은 BoA의 경우 향후 51억달러의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BoA는 올해 트레이딩 부분에서 62%의 손실을 보았고 이로 인해 등급 강등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해리스 프라이빗 은행의 잭 애블린 수석 투자자는 “미국 은행들이 당장 큰 위험에 처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은행업은 고객들의 신용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이번 신용등급의 충격이 결코 작지 않다”고 평가했다.
29일 뉴욕 주식시장에서도 모건스탠리(-3.55%, 13.31 달러), JP모건체이스(-2.06%, 28.56 달러), 골드만삭스(-1.79%, 88.81 달러) 등의 주가가 줄줄히 하락해 상당한 충격파가 감지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 주식도 0.8% 하락한 5.08달러를 기록, 2009년 3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다만 이날 함께 등급이 내려간 영국의 바클래이즈와 HSBC, 스위스의 UBS은행 주가는 소폭 상승했는데, 이는 이미 신용등급 강등 악재가 다 반영됐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이번에 등급이 하락한 은행들을 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A)·골드만삭스·모간스탠리·시티그룹 등이 기존 A에서 A-로 한 단계 하향 조정됐고, HSBC홀딩스· 뉴욕 멜론은행의 신용등급도 AA-에서 A+로, UBS와 JP모건의 신용등급도 A+에서 A로 각각 떨어졌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금융회사는 등급 전망이 하향 조정됐다. 스미모토 미쓰이, 미즈호 파이낸셜의 신용등급 전망이 각각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반면 중국계 은행들은 신용등급이 오히려 상향 조정돼 이채를 띠었다. 중국은행은 A-에서 A로 한 단계 상향 조정됐다. 중국 공상은행도 상향 조정됐다. 이미 등급이 조정된 스페인 최대 은행인 방코 산탄데르도 A-를 유지했고, 이탈리아 최대 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뱅크도 A+ 등급을 유지했다.
S&P사는“금융 산업에 대한 평가기준을 새롭게 수정하는 과정에서 신용등급을 재평가하게 됐다”며 “등급이 하락한 은행들은 금융부문의 불안감이 커지면서 실적이 악화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전했다. 이달초 발표된 S&P의 새 등급 평가법은 경제와 산업 전반 위험도, 은행 고유의 강약점을 비롯해 정부 등 외부 조직의 지원 등을 고려해 은행의 신용도를 평가한다.
이번 S&P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은 부동산 모기지 채권에 대한 신용평가 오류로 자신들에게 쏟아졌던 비난을 피하기 위한 선제조치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S&P는 지난 2008년 월가발 금융위기 당시 서브프라임(비우량주택담보) 채권에 무리하게 AAA 등급을 부여하는 등 세계 3대 국제신용평가사로서의 명성에 큰 흠집을 냈었다.
또한 S&P의 이번 조치는 경쟁사인 무디스가 15개 유럽연합(EU)의 87개 은행의 채권 등급을 하향조정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에 대한 사전 대응이라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무디스는 “EU의 각국 정부들이 위험에 빠진 유가증권 투자자들을 구제하기에는 자금이 너무 부족하다”며 이들 채권에 대한 무더기 등급 하향 조정을 예고했었다.
/워싱턴(미국)= 송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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