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에서는 유로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유럽의 중앙은행인 ECB가 시장에 개입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인 반면 다른 한 편은 그럴 경우 유럽에 "예측할 수 없는 파국이 올수 있다"는 반박이다.
전자는 미국이 지난 2008년 월가발 금융위기 때 이를 잠재우기 위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국채매입을 통해 무차별적인 유동성을 공급했다는 점을 근거로 삼고 있고, 후자는 중앙은행이 시장에 개입하면 금융권에 엄청난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고 결국 예상치 못한 파국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다.
1일 외신에 따르면 최근 유로위기 해결을 위한 카드로서 ECB가‘마지막 대출자(Last Resort of Credit)’역할을 떠 맡아야 할 것이란 압력에 저항하고 있지만 결국은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고 있다.
로이터는 30일(현지시간) 25명의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공개하면서 이 가운데 16명이 ECB가 결국 국채 매입 등을 통하여 유로 위기국들에 대한 직접 구제에 나서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은 최근 열린 유로국 재무장관 회담에서도 핵심인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확충 규모와 차입 방안이 도출되지 못했음을 상기시키면서 이런 상황에서 경제 규모가 유로권 2~3위인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구하려면 ECB가 어쩔 수 없이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가운데 21명은 EFSF가 충분히 확충돼 채권 매입에 나서더라도 ECB가 결국 위기국들의 국채를 사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ECB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나 영국 중앙은행(BOE)처럼 실질적인‘양적 완화’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다.
씨티그룹의 빌렘 뷔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유럽이 외부로부터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ECB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만이 파국을 막을 수 있다”고 내다봣다.
그러나 로이터가 ECB 분석가들을 대상으로 별도 시행한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0%만이 ECB가 유로 은행들로부터 직접 국채를 사 실질적으로 돈을 찍기 시작하는 상황이 올 것으로 관측했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미샬라 마커센 수석 이코노미스트도‘ECB가 마지막 대출자가 되는 것을 끝까지 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ECB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자면 유로 조약을 손질해야 한다”면서 “이 작업이 몇 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ECB가 (지금처럼) 유로국 정부들이 스스로 차입할 수 있도록 계속 지원하면서 기존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유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CB 집행이사를 지낸 경제학자 오트마르 이싱도 1일자 파이낸셜타임스(FT)에 실린 장문의 기고에서 "ECB가 시장과 정치권의 압박에 굴복하면 예측할 수 없는 파국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ECB가 “재정이 통화 정책화되는 덫에 걸려들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이싱은 기고에서 ECB가 유로 국채 직접 매입에 나서는 것은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는 물론 궁극적으로 중앙은행의 신뢰까지 떨어뜨려 예측하기 어려운 파국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ECB가 연준이나 BOE처럼 구제에 본격 개입할 수 없는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국가가 세수(稅收)로 채무를 상환하는 것이 원칙인데 중앙은행이 그 부담을 넘겨 받는 것은 '재정의 통화 정책화'의 덫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앙은행이 정치의 볼모가 되는 것은 절대로 주의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둘째로 유로권 상황이 미국이나 영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이싱은 ECB더러 개별 유로국 채권을 보증하라는 것은 FRB더러 미국 주정부 채권을 보증하라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라고 지적했다. 이싱은“중앙은행의 신뢰가 한번 땅에 떨어지면 회복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