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최근 유력 대선 후보로 떠오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어떨까. 안 원장의 라이벌로 흔히들 여권의 유력 대선 주자인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떠올리겠지만, 사실은 ‘한글과 컴퓨터’의 창업주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이사 사장이 먼저다.
안 원장과 이 사장은 모두 서울대학교 출신이자 국내 정보기술(IT) 산업의 1세대로서, 1980~2000년대 대한민국의 IT 발전을 이끈 인물이다.
한 명은 국내에선 불모지와 같았던 백신·보안 분야를 개척하며 V3를 개발했고, 또 다른 한명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장악하던 문서프로그램 시장에서 한글에 최적화한 ‘아래아한글’을 내놓았다. 1990년대 안 원장과 이 사장은 말 그대로 혁신을 불러일으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던 중에 1990년대 중반부터 인생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안 원장은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하며 자신의 본업에 매진한 반면, 이 사장은 일찌감치 정치에 뜻을 품고 1997년 한나라당 전국구 의원직을 승계하며 역대 최연소(당시 33세)로 원내에 입성한 것.
당시 한국 정치는 외환위기 여파로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고 있었다. 총체적 위기에 빠진 여권으로선 ‘젊은 피’를 수혈해 인적 쇄신에 나서야 했고, 그 길목에 이 사장이 있었다.
이 사장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에 당시 최고의 주가를 누리던 탤런트 김희애와 결혼하는 등 스타 최고경영자(CEO)로 거듭나던 시점이다.
그렇지만 이 사장은 정계 입문 6개월 만인 1998년 5월 의원 사퇴서를 제출하며 정계에서 물러났다. 이 사장은 당시 침체에 빠진 한글과 컴퓨터의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의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정치권에서 이 사장을 접해본 사람들은 이 사장이 스스로 정치인으로서 역량의 한계를 느꼈고, 정치인에게 필요한 ‘권력의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30대 초반까지 닮은 꼴 인생을 살아온 안 원장은 정보보호산업협회·제2의건국범국민운동추진위원회·벤처기업협회·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 등 민·재계 활동에 충실하며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쌓는데 매진했다.
안 원장의 일련의 행동이 정치적 목적에 기초한 것이라면 ‘아웃파이터’형 정치 활동은 이미 15년전부터 시작한 셈이다. 이 같은 안 원장의 ‘무심’한 행동들이 그를 대한민국 2040세대의 ‘멘토’로 키웠고, 결과적으로 유력 대선 주자로 부상한 원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다만 이 사장의 경우처럼 정치적 역량과 권력의지에 대해선 의문을 품는 시선도 여전하다. 아직 정치 신념이나 리더십에 대한 검증도 없었고 건설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출마 의사를 물을 때마다 ‘정치’와 ‘행정’을 분리해 발언한 것에 대해서도 안 원장의 사회학적 토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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