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달러 클럽’에 가입한 8개국이 전 세계 무역의 50%가량을 차지하면서 세계 무역질서를 주도해 온 것을 볼 때 우리나라도 세계 무역질서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는 기반을 마련했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어지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수출입국’을 표방해 온 한국무역의 저력이 위기돌파의 산파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과제 또한 만만치 않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 무역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급변하는 외부변동에 따른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실제로 현재 미국 및 유럽발(發) 재정 위기에 따른 글로벌 경제 침체의 격랑 속에 중견ㆍ중소기업들이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다.
◆ ‘변방에서 중심국으로’…한국무역 저력 확인
한국이 세계 9번째로 ‘무역 1조달러 클럽’에 가입하는 것은 이처럼 역경을 딛고 수출에 매진한 업체들의 힘이 뒷받침됐다.
IMF 외환 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등 어려움 속에서도 기업들은 기술 및 연구 개발에 힘을 쏟으면서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우리나라에 앞서 무역 1조 달러를 달성한 국가들의 면면을 보면 미국과 함께 G2에 올라선 중국을 제외하고 독일· 일본· 프랑스· 이태리· 영국· 네덜란드 등 서구 선진국 일색이다.
이들 나라의 연간 GDP(국내총생산)를 보면 1조 달러 무역규모가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2010년 기준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GDP 세계순위를 보면 이른바 브릭스(Bric‘s) 국가들인 브라질(2조900억 달러, 7위), 인도(1조6320억 달러, 9위) 조차도 아직 무역규모 1조 달러를 달성하지 못한 상태다. 한국의 1인당 GDP가 세계 34위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교역규모 세계 9위라는 기록은 더욱 빛난다.
전 세계 인구비중이 0.7%에 불과한 한국의 작년 세계시장 점유율은 3.1%에 달하고 있다. 196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측정된 세계 무역규모 증가율에서 한국은 적게는 1.6%포인트(2000년대 10.4%)에서 많게는 13.1%포인트(1960년대)까지 늘 앞서왔다.
여기에는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의 힘이 컸다. 조선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2000년 22%에서 2009년 31.4%로, 전자부품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6.7%에서 10.1%로, 통신기기는 4.6%에서 9.7%로, 자동차는 2.8%에서 4.6%로 각각 높아졌다.
1976년 에콰도르에 포니 5대를 수출했던 자동차 산업은 미국시장에서 GM, 포드에 이어 시장점유율 5위를 기록하고 있다.
휴대전화는 지난해 연간 4억대 이상 해외로 팔려나가면서 세계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했다.
규모가 불면서 수출 품목의 세대교체도 이뤄졌다.
1970년대에는 전체 수출액의 40%에 달한 섬유류를 비롯해 합판(11.8%), 가발(10.8%) 등이 수출을 주도했고, 1980년대에도 의류와 신발이 주요 수출 품목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선박, 반도체, 휴대전화, 자동차 등이 수출을 이끄는 주력 품목으로 올라섰다.
1990년대 후반 정보기술(IT) 버블 시기가 오면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연구 개발에의 투자와 수출 집중전략으로 난국의 돌파구를 마련했다.
◆ 2조 달러 시대 목표…풀어야 할 과제도 산적
무역업계가 어려움을 이겨내며 꾸준한 성장을 해왔지만 1조 달러 시대를 넘어 2조 달러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숙제도 많다.
업체들이 지나친 대외의존도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면 기술 및 연구개발 투자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어 기업 경쟁력 저하에 따른 경제성장률 둔화가 불가피하다.
한 업체 관계자는 “세계 경제위기에 원가절감만이 유일한 대책”이라며 “신제품이나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한국무역협회(무협) 국제무역연구원의 조상현 연구위원은 “1970~80년대 오일쇼크 등과 비교하면 현재는 그나마 외부 변동에 기업이 회복하는 속도가 빨라졌지만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조 위원은 “무역 1조달러 시대를 넘어 한국 경제가 더 발전하려면 반도체, 자동차, 선박, 석유제품 등 특정 품목에 집중된 수출 구조를 다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손영기 대한상공회의소 거시경제팀장도 “3분기부터 해외 경기가 좋지 않아 여파가 국내에 미치고 있어 수출이 둔화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며 “선진국보다는 중국 등 신흥시장 개척과 기업 경쟁력 강화에 힘써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서비스 무역의 비중도 17.8%으로 미국(21.2%)과 독일(18.8%)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하병기 산업연구원 부원장은 “한국 수출산업은 준첨단기술(자동차, 화학 등)과 정보통신기술에 강점이 있으며 기술경쟁력보다는 가격경쟁력에 주안점을 두는 구조”라며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샌드위치 구조 탈피, 서비스 무역활성화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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