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동맹의 실패역사는 1865년 프랑스와 벨기에, 이탈리아, 스위스 4개국에서 출발한 ‘라틴 통화동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틴 통화동맹은 프랑스의 화폐 ‘프랑’에 연계된 통화를 사용하던 인접국가들이 금․은본위제 유지를 목적으로 창설했고, 이후 그리스도 추가로 참여했다. 그러나 통화의 가치를 금과 은의 가치에 연계하는 금․은본위제는 금과 은의 양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시장왜곡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금의 양이 부족해 은화발행을 늘리자 은화가치가 추락했고, 각국의 경쟁적인 은화매도와 금, 은 함량차이를 이용한 환투기가 성행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났다. 여기에 1차 세계대전까지 발발했고, 전쟁비용조달을 위해 화폐발행이 급격히 확대되는 등 통화동맹유지가 어려워지면서 1927년 해체의 수순을 밟았다.
1873년 스웨덴과 덴마크가 설립하고, 2년 뒤 노르웨이가 참여한 금본위제 통화기구 ‘스칸디나비아 통화동맹’은 지금까지도 외형상 명맥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고정화폐로서의 가치는 상실한지 오래다.
스칸디나비안 크라운을 단일통화단위로 채택한 스칸디나비아 통화동맹은 자국 통화를 유지하되, 크라운에 환율을 고정하면서 불안정한 상태에서도 수십년간 지속됐다. 그러나 이마저도 1차 세계대전으로 통화발행이 증가하고, 국가간 등가교환이 무너지면서 차익거래가 확대, 금본위제가 중지되면서 사실상의 통화동맹 해체를 가져왔다.
1960년대초 식민지배로부터 각각 독립한 케냐와 우간다, 탄자니아가 맺은 ‘동아프리카 3국의 공동통화’도 실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각국의 관세동맹으로 출발한 동아프리카 3국 공동통화는 1977년 해체 전까지 실링화를 공통으로 사용했지만, 케냐의 경제적 우위에 따른 이해관계 대립으로 공동통화사용 유지가 어렵게 됐다.
다른 두 국가에 비해 제조업이 발달한 케냐만이 무역수지에서 대규모 흑자를 기록한 것이 공동통화 사용을 와해한 주된 이유가 됐다.
현재의 유로존 붕괴위기는 경제력에서 확실한 비교우위를 지닌 독일 위주의 통화정책 운영이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점에서 동아프리카 3국 공동통화의 실패사례에 가장 근접해 있다.
동일하고 낮은 정책금리로 독일 주변국의 경제부양효과가 발생하긴 했지만, 주변국의 자산시장에 과다한 거품이 형성되면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때 거품이 한꺼번에 붕괴되는 약점이 노출됐다.
특히 역내 환율이 고정되어 있어 환율조정에 따른 경상수지 적자해소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독일 등 핵심국은 환율 저평가로 경상수지 흑자가 누적되는 반면, 주변국들은 환율 고평가로 적자가 지속되는 무역 불균형이 야기됐다.
주변국의 인플레이션 차단을 위해서는 엄격한 재정정책을 사용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각국이 재정적자 수준을 숨기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유로존 위기에 대해 우리 정부는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의 통합, 경제적 차이에 대한 고려 부족, 정치적 구속력 부족 등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기획재정부는 “역사적으로 통화동맹의 실패사례는 동맹의 이익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 했다”며 동맹의 이익을 위한 정치적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유로통화동맹은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에 한계가 있는 만큼 재정통합이 더욱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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