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작가' 김덕기 "신문배달도 해봤고 가슴시린날 많았죠"

  • 롯데갤러리서 '차가운 겨울너머로' 초대전..인기작가 되기전 수묵채색등 70점 전시

16일 롯데갤러리에서 김덕기 작가가 2001년 그린 수묵채색 '집으로' 작품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이 작품의 사인은 현재 사용하는 Duki ki와 달리Dukigi로 되어있다.  사진=박현주기자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1999년 겨울, 그는 신문배달을 했다. 어두운 밤 1시에 나가 아파트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했다. 다리에 쥐가나기도 했다. 일은 새벽 6시가 되어서 끝났다. 반복이었다. 어느날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동이 트기 전 하늘에 달이 휘엉청했다. 달을 보자 서러워졌다. 대학까지 나와서 내가 무엇하는 걸까. 처음으로 하느님을 원망했다. "국민작가가 되겠다고 했는데 이게 뭡니까."
 
본향을 생각하는 나그네, 1999, 순지에 수묵채색, 142x73cm

1999년에 그린 '본향을 생각하는 나그네'는 그렇게 나왔다. 당시 결혼을 앞둔 대학원생이었다. 서러움과 원망속에 바라본 새벽하늘의 풍경은 서늘하다. 그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

그는 '행복한 가족' 그림으로 유명한 김덕기(43)작가다. 화려한 색감과 밝은 가족의 일상이 점점점 박혀있는 '행복하고 달콤한 그림'은 단박에 나온게 아니다. 밑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새벽녁 서늘한 기운을 맛보고 시대의 우울을 통과해냈다.

전업작가로 변신한 인생 2막은 서러움을 풍요로움으로 격상시켰다. 이젠 작업실에 '재고'가 없을 정도로 인기 작가다.

전시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신사동 어반아트에서 개인전에 이어 오는 17일부터 명동 롯데백화점 롯데갤러리와 애비뉴엘에서 초대전이 열린다.

전시 타이틀은 '차가운 겨울 너머로'. "당신의 눈을 감고 가만히 보아요. 하얀 눈발이 끝없이 펼쳐진 위로 동그란 태양이 환하게 빛나고 있어요"라는 작가의 자작시에서 제목을 따왔다.

이번 전시는 "김덕기 그림 맞아?" 할 정도로 초기작품 부터 선보인다. 초창기 먹작업부터 최근 유화작업, 과슈 오일파스텔 수채화 드로잉까지 70여점을 걸었다. 작가의 과거를 만날수 있는 쁘띠 회고전형식이다.
 
김덕기 작가가 롯데갤러리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현주기자

16일 롯데백화점 12층에 위치한 롯데갤러리에서 작가를 만났다. 빈티지해보이는 굵은 골덴 재킷에 흰 와이셔츠를 입은 그는 작품앞에서 하나하나 장면과 풍경을 짚어가며 그림내용과 기법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이어졌다. 미술시간 같았다.

"놀이터 정글짐에서 놀던 아이가 떨어진 사건이 있었어요. 순간 숨이 멎는 듯 3~4초 멍했는데, 떨어진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라고요. 높은 곳에서 떨어졌는데 솜털하나 다치지 않아서 천사가 도왔다고 할 정도였어요. 그 다음날 바로 감사의 기억을 담아 이 그림을 그렸죠."

2001년 그린 '집으로'라는 그림이다. 콘테와 목탄으로 그린 이 작품은 빽빽한 지금의 그림과 달리 여백이 많다. 해가 뉘엇뉘엇지자 아빠는 더 놀겠다는 아이를 잡으러 다니고,  저녁식사를 준비하던 엄마는 아빠와 아이를 부르러 나왔다. 그런데 그림은 분위기가 어둡다. 검은 해가 정글짐보다 낮게 그려져 있다.

"해는 지고 어둠은 찾아오지만 일상은 계속됩니다. 또 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죽음은 끝이 아니고 인생은 영원성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삶은 아련한 추억을 품고 살아가나 봅니다."

결혼식 전날 벗은 신발으로 보고 그린  '부부',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이 담긴  '웃음소리-아름다운 순간들'등 한지에 초기 수묵작업은 여백의 울림이 크다.  또 샤갈 그림인가 할정도로 비슷한 그림도 있다. 작가는 "샤갈전이 열렸을때 전시를 보면서 나도 샤갈같은 작가가 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살펴보니 예전 그림이 지금보다 훨씬 순수하더라고요. 지금은 전업작가이기때문에 잘돼야한다는 압박감이 많거던요. 팔아야 하는 그림을 그리다보니 완벽한 세팅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전 작품들은 팔려고 그린 작품이 아니어서인지 여유와 여백이 많이 느껴집니다. 이 전시는 제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는 "프로포즈 하는 그림도 한달전부터 눈을 감고 부인에게 사랑고백을 하던 생각을 떠올리며 그렸다"며 "전시장에 옛그림을 걸면서 오히려 나를 돌아볼수 있는 기회가 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도 잡은 것 같다"고 했다.

가까이 더 가까이 한지에 수묵채색.2002.

10년간 고등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했다. 쪼개쓰는 작업시간. "작품을 토해내고 싶다'는 열정이 꿈틀거렸다. 2007년 아내에게 말했다.

"그림만 그리는 전업작가가 될 거야". 아내는 "이혼하자"고 했다. 고향인 여주로 작업실을 옮기고 일주일에 한번만 집에 갔다.

일년후 '김덕기'는 미술시장에 떴다.   2008년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은 대박이었다. 재구매하는 컬렉터들이 늘었다. 이젠 그림만 봐도 "김덕기네" 할 정도다.

이제 아내는  '경제 박사'다. 세계경기 동향은 물론 국내 미술시장경기도 살핀다. 경기에 민감한 미술시장에서 흔들림없도록 기도하고 남편옆을 지키고 있다. 

웃음소리-봄,여름, 가을,겨울, 2004-2005, 한지에 혼합재료, 138X172cm./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작가는 어느날 아이가 쿵쿵쿵 뛰놀자 시끄럽다며 아래층에서 올라왔다. 이때 아들은 땅굴을 파서 들어가서 놀자고 했다. 아들의 말을 듣고 나온 그림이다.

가족은 힘이다. 그는 가족을 그리고 가족과 함께 행복하다.

유독 가족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67세에 작가를 낳았다. 할아버지 같은 아버지의 늦둥이로 태어나 막내로서 사랑을 듬뿍받았다. 아버지는 이북에서 건너온 실향민이었다. 북에 두고온 가족생각에 날마다 어찌 살고 있는지 날마다 걱정이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두번째 부인. 나이차이가 30살이나 났다. 그런데 어머니가 50세때 먼저 돌아가셨다. 그가 중학생때였다. 한약방을 하시던 아버지는 감초를 막내에게 지어주며 먼산을 바라봤다. 그가 고등학생때 아버지는 82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작가는 "누구에게나 유년시절이 중요하다. 특히 작가에게는…." 이라고 말했다.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났다. 작품 전반에 등장하는 아이는 그의 아들이다. "이젠 작품을 간섭할 정도로 컸어요." 12살 아들은 전시할때마다, 이걸 내라, 저걸 내라며 아버지는 '행복한 작가'라고 말한다.

애비뉴엘 입구에 걸려있는 김덕기의 가족-함께하는 시간.

수묵채색화에서 목탄의 어두움을 벗고 참신해졌다. 그림자도 없다. 인형의 집처럼 안팎의 구분이 없다. 투명하게 노출된 집안에는 사랑으로 넘치는 가족들이 가득하다. 

인생은 희노애락의 칵테일이다. 소소한 일상을 잘게 저며 점점점 큰상을 만들어낸 신작은 무지개빛으로 춤춘다. 1분1초도 낭비할수 없다는 듯 꼭꼭 채웠다. 

 이번 전시에는 5분 20초짜리 영상도 나왔다. 봄을 주제로한 드로잉 30여점이 아이콘을 따라서 움직인다.

꾸미지 않은 일상의 향기는 무엇보다 진하다. 
행복이란 거대하거나 웅장한 것이 아니다. 또 위대하거나 막강한 것도 아니다. 작고 예쁜것, 솔직한 대화, 따스한 웃음. '낙원은 일상속에 있던지 아니면 없다'. 그의 그림은 모두의 가슴과 가슴에 행복한 미소의 다리를 놓아준다.  전시는 내년 1월 4일까지.(02)726-4428
 
김덕기.겨울.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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