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 멋쟁이 '무의자'(無衣子) 권옥연화백 별세

붓글씨 쓰기를 좋아해 늘 붓을 꺼내 이야기를 나누던 생전 권옥연화백.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미술음악 서예를 즐기던 미술계 '멋쟁이 화가' 가 타계했다.  대한민국 예술원회원 서양화가 권옥연화백이 16일 오후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호는 '무의자' (無衣子) 벌거벗은 사람으로  모두 버린다는 의미다.

생전 고인은 "거창하게들 의미를 부여하지만 별 것 아니야, 영어로 누드스트잖아.재미있지않아?"라며 허허허 웃었었다. 

고인의 작품은 그늘진 표정의 소녀,고분벽화, 토기, 목기, 초승달, 날개짓하는  새, 문학적 은유와 음악적 선율이 숨쉰다. 동양적인 깊이감과 음악적인 리듬감이 융합되어 중후하면서도 신비감이 감돈다. 

 초현실주의 주창자 앙드레 브르통에게 '동양적 쉬르레알리즘'이라는 평을 받았었다.  앵포르멜 영향을 받아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독창적 화풍을 구축한 작품은 국내 미술시장에서 블루칩 명품으로 인기가 높았다. 

고인은 우리나라현대미술사적인 산 증인이자 음악을 즐기는 멋쟁이 화가였다. 

어릴적 조부로부터 서예를 배웠고, 바이올린에 심취한 부친을 통해 음악적 영감을 익혔다. 예향이 감도는 가풍 속에서 자란 그는 숙명처럼 예술을 향한 구도자적 자세로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자의식이 강해 고고한 선비에 비유되는 권화백은 미술계에서 특히 덕망이 높았다.
 
2009년 연말 한국미협 ‘올해의 미술상’에서 명예공로상을 수상했지만, 함께 수여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은 끝내 마다했다.   스스로를 내세우지 못하는 지독한 반성에서였다. 

늘 주머니에 붓을 넣고 다니며 붓글씨를 쓰는 걸 좋아했다. 추사 김정희를 사랑한다는 권화백은 "추사가 말년에 쓴 어린애 같은 글을 보면 난 어림도 없어. 그쯤되어야 예술가라고 하지. 치졸하게 그리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야. 날 보고 화가라는 말 하지말아. 그림은 아직도 너무 힘들고 어렵다"고 했었다. 

고인은 1923년 함남 함흥에서 태어나  1944년 일본 동경제국미술학교를 졸업한 뒤 1957~60년 프랑스 파리아카데미에 유학했다.  유학을 계기로 '앵포르멜'(서정성을 강조하고 색채에 중점을 두는 추상화 경향)의 영향을 받아 추상과 구상을 넘나드는 독창적 화풍을 구축했다. 

서울대와 이화여대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1979년부터 금곡미술관 관장을 맡았다.

지난 6월 남양주에 있는 '무의자 박물관'을 세계적인 문화예술공간으로 키우기위해 '무의자 문화재단'을 출범시켰다.

 무의자 박물관은 고인과 부인 이병복씨가 사재를 털어 '궁집'이 위치한 경기도 남양주 금곡마을 일대 2만6천400㎡(8천여 평)의 부지에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고인은 박물관대한민국예술원상, 보관문화훈장, 한국미술협회 올해의 미술상 명예공로상(2009) 등을 수상했다.

유족은 부인 이병복(무대미술가)씨와 딸 이나(재불 화가)씨, 아들 유진(첼리스트)씨가 있다. 빈소는 고려대 안암병원 장례식장 301호. 발인은 20일 오전 9시. (02)923-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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