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을 빠져나간 차는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향했지만 가족들은 뒤따르지 않았다. 그의 시신은 서울대병원에 해부 실습용으로 기증됐기 때문이다.
30년 이상 한쪽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살았던 전직 공무원이 의학 교육을 위해 써 달라며 자신의 시신을 기증해 감동을 주고 있다.
19일 박씨 유가족 등에 따르면 옛 체신부 기술직 공무원이던 그는 1970년대 후반 출장길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팔과 다리가 마비되는 장애를 얻었다. 한창 일할 40대 초반의 나이였다.
사표를 쓰고 20여년간 교회 집사로 일했지만 불편한 몸 때문에 집에 있어야 하는 날이 많았다. 수년 전부터는 심장질환과 전립선질환 등 각종 병을 앓아 거동조차 어려웠고 아내의 병시중을 받아야 했다.
자신도 장애가 있는 몸이었지만 박씨는 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곤 했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둘째 아들(43)은 “집이 낡아 난방 문제로 수리해야 했는데 아버지는 일부러 형편이 어려운 업자를 불러 일을 시켰다”며 “그 바람에 돈만 더 들이고 수리는 잘 안 돼 추운 상태로 지낸 적도 있었다”고 회고했다.
별다른 수입 없이 공무원 연금으로 생활하면서도 10여년간 매달 일정액을 꽃동네에 꼬박꼬박 기부했다.
자신의 몸을 기증할 결심을 한 것은 병세가 눈에 띄게 악화된 2년여 전이었다. 박씨는 당초 장기기증을 원했지만 투병으로 장기가 많이 손상된 탓에 의학용 기증을 택하게 됐다.
그는 생전 ‘집안이 어려워 공부를 마음껏 하지 못했지만 의학 발전에 보탬이 되고 싶다. 내 몸에 병이 있으니 해부하면 의대생들이 공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씨의 설득 끝에 아내도 사후 장기기증 서약을 했고, 뒤이어 아들과 며느리도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다.
박씨의 시신은 서울대 의과대학 학생 교육을 위한 해부 실습에 사용된 뒤 유족에게 다시 인계된다.
서울대 의과대학 측은 “(박씨처럼) 개인의 특별한 의지가 있어 시신 기증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힘들게 투병해온 입장에서 기증을 결정해 주신 것이 존경스럽고 감사하다.
고인의 뜻을 받들어 소중히 활용하겠다”고 전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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