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사망> 37년간 철권통치한 김정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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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12-19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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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현철 기자) 사망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아버지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이후 수 십 년간 절대 군주로 북한을 통치했다.
 
 김정일 정권이 공식 출범한 것은 1998년 그가 국방위원장에 재추대된 이후지만 실질적으로 북한을 다스린 것은 그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내정된 이후다.
 
 이 시기부터 아버지를 상징적인 존재로 만들고 자신이 통치자가 되는 준비를 해나갔으며 1980년 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임을 내외에 선포한 후부터 사망하기까지 37년간 북한의 절대자로 군림해 왔다.
 
 ◆치밀한 방법하에 권력장악
 
 김 위원장은 당 조직지도부를 통해 정치에 입문한 이후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될 때까지 10년 동안 권력승계를 위한 경험축적과 자질향상, 김일성의 인증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조직지도부 지도원에 이어 1967년부터 선전선동부 과장, 부부장을 지내면서 김일성의 장남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김일성의 정책에 불만을 느끼거나 권위에 도전하는 인물들과 그들의 활동을 적발해 김일성에게 보고하고 숙청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김일성의 신뢰를 받은 김정일은 김정숙의 항일빨치산 동료인 원로간부의 후원을 등에 업고 권력 2인자인 삼촌 김영주 당시 당 조직지도부장, 정치적 힘을 과시하던 계모인 김성애, 김일성의 사랑을 받던 이복동생 김평일을 밀치고 1973년 후계자 자리인 당 조직 및 선전비서에 올랐다.
 
 이듬해 2월 제5기 8차 당 전원회의에서 김 주석의 공식 후계자로 내정됐다.
 
 김 위원장은 후계자로 공식 내정된 시점에서 김일성을 신격화하는 수준을 극대화하는 수령절대주의 체제를 확립하고, 이것이 자신에 대한 우상화로 이어지도록 해 권력을 장악해 나가는 수법을 사용했다.
 
 그는 주체사상탑과 김일성 동상, 혁명사적지 등 북한 여러 곳에 김 부자와 그 가계를 선전하는 시설물 건설과 외국에서 주체사상 홍보 등에 막대한 재원을 투자했다.
 
 한편 당 조직지도부를 확대 개편해 모든 인사권과 통제 및 감시권을 가진 핵심부서로 구축하고 김일성에게 올라가는 모든 보고가 사전에 반드시 자신을 거치도록 하는 시스템을 확립해 국가권력 전반을 만들었다.
 
 군에 대해서는 직접 장악보다는 군 인사권을 당 조직지도부로 이관해 통제함으로써 영향력을 확대해 나갔다.
 
 ◆가족과 권력투쟁까지

 김정일이 권력장악을 위해 가장 주력한 것은 친인척 제거였다.
 
 김정일의 정적 중 삼촌 김영주는 반종파투쟁 과정에서 그의 측근들이 제거됐으며 1970년대 후반 자강도 강계로 쫓겨나 외부와 격리된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김정일은 1990년대 초 김영주를 부주석으로 복원시키고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라는 이름 뿐인 직책을 줬지만 이미 힘이 빠질 대로 빠진 후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또 계모와 이복동생들은 '곁가지'로 규정해 1975년부터 이들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사람들을 전부 추방했으며, 본인들은 모두 해외에 내보내 국내에서 새로운 추종세력이 형성되거나 결집할 가능성을 틀어 막았다.
 
 이 당시 김정일은 당권 장악 차원에서 전국의 알짜 공장과 농장을 국가경제 시스템에서 떼어내 당 산하로 소속시키는 '당 경제'를 조성했으며 이러한 체제는 국가경제를 훨씬 추월하고 김정일만을 위한 독립적인 경제분야로 급속히 성장하는 등 경제분야에도 힘을 쏟기 시작했다.
 
 한편 하락세였던 당시의 경제침체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권력장악의 기회로 삼고자 '70일전투', '속도전' 등 다양한 증산 캠페인과 무리한 대중동원 방식을 발기했다.
 
 그가 주도한 이런 식의 경제운용 시스템은 경제논리를 철저히 무시하고 정치논리만을 앞세운 것으로 오늘날 북한 경제와 주민생활을 어렵게한 주요 원인의 하나다.
 
 김정일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을 통해 국가권력 전반을 사실상 장악했으며 1980년 10월 6차 당대회를 통해 정치국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선출되면서 대외에 후계자임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특히 이 대회에서 김정일은 군인이 아닌 인물로는 유일하게 당 중앙군사위원으로 임명되면서 군권을 본격적으로 장악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했다.
 
 이때부터 그는 서열상으로는 김일성 아래의 2인자였지만 실질적인 지위는 김일성과 동격의 수준으로 절대화됐고, 김일성을 상징적인 '수령'으로 제끼고 아버지를 능가하는 실질적인 통치자로 우뚝 섰다.
 
 김정일은 1990년 5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1991년 12월 최고사령관, 1992년 공화국 원수에 추대된 데 이어 1993년 김일성으로부터 국방위원장직을 공식 승계함으로써 권력 승계에 따른 절차까지 끝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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