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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은 실수조차 허락하지 않는 전쟁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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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12-21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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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금정119안전센터 조선덕 소방장)
금정119안전센터 조선덕 소방장

그 어느 누군가가 ″너의 의무를 다하고 그리고 나머지는 신께 맡겨라″라고 했다. 사람의 삶과 죽음의 중심에서 있는 나에게는 다시 한 번 가슴에 깊이 새기 된 글귀다.

2011년 5월 9일 아침부터 여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날씨 때문인지 교통사고 등으로 인한 구급출동이 잦았다.

늦은 밤 다시 출동 벨이 울렸다. 출동장소는 금정119안전센터 뒤 아파트로 환자상태는 노인성 전신쇠약이라고 무전이 나왔다.

다행히 응급상황은 아니라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사고현장에 도착했다. 근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3분 만에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보호자의 안내를 받아 방안으로 들어가서 보니, 마른체구의 노인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힘없이 침대에 누워 있었다.

보호자에 의하면 침대위에서 같이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말을 잘 못하고 의식이 점점 떨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즉시 환자분 곁으로 가서 생체징후를 체크했다. 혈압을 체크하기 위해 환자의 손을 잡는 순간 차갑고 축축한 싸늘함이 나의 뇌신경까지 전달됐다. 보호자들이 단순하게 생각하는 노인성 전신쇠약 증세가 아니었다. 환자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보를 보호자에게서 끌어내어야 한다라는 생각에 이것저것 질문들을 하면서 우선 들것에 옮겼다.

환자는 식도암 환자로 체력저하로 인하여 방사선 치료를 중단하고 있었다는 말이 내 귓가에 전해졌다. 환자는 암 환자였다.

그것도 중중 암환자. 구급차에 옮겨진 후에도 환자의 의식은 점점 떨어지고 있었으며, 호흡과 맥박이 빨라지고 있었다.

기본 생체징후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 흔들리고 있었다. 응급상황이었다. 이대로 간다면 심정지가 올수 있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보호자에게 환자의 위급한 상황을 설명하고 인근 병원으로 이송하려는 찰라 환자의 병력을 이유로 ‘국림암센터’로 이송을 원하였다. 청청벽력 같은 소리였다. 환자가 매우 위독한 상황이었기에 1~2시간이나 소요되는 병원으로 가기까지는 무모한 모험이었다.

하지만, 인근병원에서는 외면당하는 암 환자의 가족들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 1분 1초도 지체할 수 없었다.

환자의 상태가 매분 매초 간격으로 나빠지고 있었고, 원인도 알지 못했다.

10여년 구급현장 활동을 경험했지만, 나의 모든 신경과 근육들이 긴장하고 있었으며, 마음은 이미 국립암센터 응급실로 향하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였으나, 환자의 상태는 호전을 보이지 않았다. 각종 모니터링 및 산소투여, 5분 간격의 생체징후 체크를 실시하였지만, 의식이 떨어지는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보호자에 의하면 식도암 외에는 합병증조차 없는 분이라고 하였다.

환자가 사경을 헤매고 있었으나, 구급차안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안타까움에 괴로울 뿐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지? 무엇이 문제지?″ 생각만 맴돌고 있었다. 보호자들이 흐느낌에 다시 한 번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었다. 처음부터 하나하나씩 다시 체크하고 정보를 조합하고 내가 빠뜨린 것은 없나?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순간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건 ′축축한 피부, 맥박과 호흡이 빨라져?′ 혹 저혈당쇼크는 아닐까? 즉시 혈당측정기 키트를 열어 환자의 채혈을 받았다. 숫자가 나오기까지 10초 그 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10초가 지나고 ″삐리릭″ 소리가 나면서 화면에 띄워진 숫자 ′34mmHg/dl′ 이럴수가 저혈당쇼크였다. 너무나 낮은 수치로 하마터면 심정지가 올수 있는 매우 낮은 수치였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응급의료지도 의사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번호를 누르는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수액 병을 걸고 환자의 혈관을 찾기 위해 옷을 걷었다. 이럴수가 환자는 생체징후가 흔들리는 중중 암 환자였다.

정맥로 확보를 위한 혈관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나의 손가락 감각으로 만져지는 모세혈관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구급차는 빗길을 헤치며 고속도로를 달려가고 있었다. 앞으로 1시간이나 더 가야 병원에 도착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믿을 수 있는 건 나 자신밖에 없었다.

보호자의 모아진 두 손에 눈물만 떨어지고 있었다. 빗길에 구급차는 평소보다 더욱 흔들렸고, 싸이렌 소리는 더욱 거세게 들렸다.

다시 한 번 심호흡을 가다듬고 호흡을 멈추었다. 맘속으로 간절히 ″제발...제발...한번만″을 외쳤다. 손가락의 모든 감각을 이용하여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을 밀어넣었다.

순간 주사바늘안으로 빨간색 혈액이 밀려나왔다. 성공이었다. 조금만 있으며 의식이 돌아올 것이다. 100cc 포도당이 모두 들어갈 무렵 환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힘없이 감겨있던 눈이 약하게 떨리면서 입술근육이 실룩거리는 그 순간 구급차내는 가족들의 비명섞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마법같은 일이 생겼다. 깊은 잠에서 지금 막 깨어나신 것 같이 부스스한 말투로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생명을 관장하는 그 누군가가 계시다면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외치고 싶었다. 다행히도 환자 의식이 회복되면서 생체징후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환자의 상태악화를 방지하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을 경유하여 간단한 응급처치를 받은 후 환자의 전문적인 치료를 위하여 다시 국립암센터로 구급차를 돌렸다.

며칠 후 환자와 보호자께서는 금정119안전센터를 방문하셔서 그 당시 상황을 회상하시며, 고마움을 다시금 전하셨다. 담당주치의에 의하면 그 당시 119의 적절한 처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생명을 잃을 수 있었다며 우리에게 다시금 고마움을 전했다.

아무리 사소한 것들이라도 그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간절할 수 있었음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했다.

작은 실수조차 허락지 않은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현장에서 차갑고 날카로운 두뇌와 영원히 식지 않은 뜨거운 심장을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지닐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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