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달래줄 음료수를 사러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텔레비전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봤다.
독재자를 떠나보내며 그토록 슬퍼하는 것이 의아했지만 그들의 눈물에서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2011년 12월 김일성 주석의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마치 시간을 되돌려놓은 듯 텔레비전 속 북한 주민들은 그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들의 눈물에서는 진정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왜일까.
김일성이 통치하던 북한은 경제가 성장기에 있었고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면 김정일 통치 기간에는 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했고, 화폐개혁 등 북한 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정책들도 모두 실패했다.
두 지도자의 장례를 치르면서 주민들이 상반된 태도를 보인 가장 큰 이유는 삶의 질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중국의 요(堯) 임금이 다스리던 시절 백성들은 잘 먹고 배를 두드리며 천하가 태평하다고 즐거워했다.
태평성대를 뜻하는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유래다.
맹자는 제나라 선왕이 왕도(王道)에 대해 묻자 "백성들이 위로는 넉넉히 부모를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넉넉히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으며 흉년이 들어도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백성들이 끼니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정치의 요체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지금이라고 그 이치가 달라졌을 리 없다.
45년이나 권좌를 지켰던 김일성이 17년을 통치한 김정일보다 북한 주민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고 있다. 내년에는 국회의원들을 뽑는 총선과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치러진다.
국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국내 경제도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족한 생활비 때문에 카드를 돌려막고, 급전을 빌리려고 사금융을 기웃거리는 국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
떠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하는 현 권력자나 새로운 권력자가 될 꿈에 부푼 이들 모두 '함포고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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