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對)중국 무역이 대미 무역보다 커진 상황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줄어든 틈을 중국이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향후 미국과 중국이 대립할 때 우리는 미국 혹은 중국을 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곤란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끔찍한 시나리오 이야기도 쉽게 들을 수 있다.
20년 전 덩샤오핑은 "한국과의 수교는 무해양득(無害兩得)이다. 일득(一得)은 중국의 통일에 좋고, 이득(二得)은 중국 경제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당과 내각에 한·중수교를 비밀리에 추진할 것을 특별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오늘, 동북아 외교질서 잡는 중국
한국과 중국이 수교를 맺을 당시만 해도 오늘날 중국이 동북아 패권을 흔들 만큼 성장해, 미국과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날을 예측하기란 쉽지 않았다.
동북아 외교질서를 흔든 것은 바로 중국이라는 재미있는 사실을 짚어본다면 20년 전의 중국을 보고 20년 후의 중국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묘향산 별장에 당도한 첸지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과 통역 장팅옌(張庭延·초대 주한중국대사)은 1992년 7월 15일, 김일성 북한 주석을 만나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곧바로 장쩌민(江澤民) 당시 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구두메시지를 낭독했다고 보도된 적이 있다.
김 주석의 예감대로 한·중수교를 공식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북측에 최후통첩한 것이다.
이를 접한 김 주석은 매우 침통한 표정 속에서 잠시 숙고한 뒤 짤막하게 "우리는 자주노선을 걷겠다. 중국이 하는 일은 중국이,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라고 말했다.
이는 앞으로는 중국과 관계없이 독자적으로 '우리의 길'을 걷겠다는 의미로, 중국에 대한 강도 높은 배신감과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김 주석이 중국에 통고한 자주노선 표방은 사실상 북핵문제의 서막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중 양국이 수교되는 동시에 한국은 대만과 단교한다. 한편 구소련 체제가 붕괴된 이후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중국이 남한과 수교하자 김 주석이 느낀 외교적 고립감은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북한은 '자주노선'을 걸으며 핵개발에 매달린다.
동북아 외교질서를 뒤흔든 한·중수교를 결정한 이는 바로 중국 최고지도자인 덩샤오핑(鄧小平)이었다. 혈맹인 북한 김일성 주석의 반발을 무마하면서 집단지도체제의 '총의(總意)'로 한·중수교를 추진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문가들은 중국을 이렇게 설명한다. "상도가 몸에 밴 중국인들은 이득을 위해서라면 굳이 실용주의 노선을 마다하지 않는다."
무해양득(無害兩得)을 강조한 덩샤오핑의 중국 통일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지만 중국 경제발전만은 뜻대로 이룬 것 같다.
◆'중국의 시대'에 수교 20년을 맞은 '성년한국'
북한에선 새로운 정치체제가 들어섰고 이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대두되는 가운데, 한반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두려울 정도다.
전문가들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지난 30년간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아졌다며 중국 중심의 지역질서 등장과 이들의 지정학적 패권주의 등장은 필연적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등을 둘러싸고 중국과 영토분쟁 중인 일본은 미·일 동맹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중국과 긴장관계를 유지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또 최근 중국을 능가할 만한 국가로 떠오른 인도와 미·일 동맹 등을 내세우는 일본만이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심지어 20년 후 진정한 경제대국으로 살아남는 쪽은 중국이 아니라 인도라는 말도 나온다.
반면 한·중수교 20년을 맞은 '성년한국'은 점점 더 중국에 의존해 예속되고 말 것이라는 예측도 심심찮게 들린다.
어찌됐든 현재 북한의 새 체제 등장과 함께 통일 한국을 이뤄야 하는 부담이 더해진 한국으로서는 중국과의 관계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20년 전 우리의 우호국 대만과의 단교를 선택했던 우리와 혈맹국인 북한을 등지면서까지 선택했던 한·중수교가 이제 중국에는 무해양득을 넘어서 국력을 과시하는 장(場)으로 발전했고, 우리에게는 외교력을 발휘할 기회로 다가왔다.
철저한 국익 확보를 위해서는 때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않는 외교는 바로 '총성 없는 전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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