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서는 ‘기업친화적’ 정책이 후퇴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올해 선거를 앞두고 포퓰리즘 성향의 반기업 규제가 성행하면서 기업들의 경영의지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어려운 경영 환경에 처한 기업들이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정책 일관성이 뒷받침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투자의지 꺾는 사정 한파=기업들은 올해 경제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10대 그룹 중 6곳이 내년보다 투자액을 더 늘리겠다는 공격경영 방침을 내세웠다.
현대차그룹은 역대 최대규모인 14조 1000억원을 올해 투자하기로 했다. SK도 검찰 조사로 총수의 경영공백이 장기화된 어려움 속에서도 올해 사상 최대규모인 19조원 투자와 7000명 채용 계획을 확정했다. 또한 GS도 작년보다 48% 증가한 3조1000억원을 투자키로 했으며, 삼성도 역대 최대치인 50조원 안팎의 투자금을 정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정부가 올 상반기 높은 비중의 예산 집행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결제활성화를 위해서는 활발한 기업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주요 그룹들의 공격투자계획은 국내 경제에 희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기업들의 투자 계획이 차질없이 실현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전적으로 정부의 몫이다.
하지만 오히려 기업에 대한 검찰 사정 한파가 거세지면서 일각에선 정권 말기의 레임덕(권력누수) 방지용이 아니냐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SK와 금호석유화학 등 검찰 수사를 받았던 대기업들은 올해도 추가 조사를 받거나 법원의 판정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모처럼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작심했어도 검찰 조사로 인한 경영 공전사태가 발생하면 불발에 그칠 수도 있다.
◆“조사 강도 갈수록 심해져”=실제 검찰 조사를 받는 기업들은 업무차질과 기업이미지 하락 등 타격이 심각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조사를 받은 230개 대상 기업을 조사한 결과, 84.8%는 조사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답했다.
주로 업무차질이 가장 심했고 법률자문비용이나 임직원의 스트레스, 기업이미지 하락, 회사기밀 유출 등이 조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으로 꼽혔다.
최근 사정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기업들이 체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기업들은 공정위 조사가 과거 2~3년 전에 비해 빈번해졌다고 느끼고 있었다. 응답기업의 54.5%가 빈번해졌다고 답변했다.
조사강도도 과거보다 강화됐다는 응답이 60.8%에 달했다. 납득하기 어려운 사정 강도는 기업들의 경영활동에 대한 의욕을 꺾어 놓게 돼 경제활성화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정책 일관성 훼손 우려=검찰 사정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책 규제의 일관성이 훼손될 것에 대한 기업들의 우려도 높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과 이란의 대치상황 등 대외 경제 불확실성이 팽배한 가운데 국내서도 선거를 앞두고 인기에 영합한 정책이 난무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위한 정책 과제로 규제개혁과 정책일관성 유지, 반기업정서해소 등을 지목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 한국이 가장 빨리 회복한 건 대기업이 수출시장에서 열심히 노력한 측면도 크다”며 “정치적인 이유로 대기업을 백안시하는 정책을 남발하는 건 이 정부에 철학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전무는 “비즈니스 프렌들리가 심각한 물가문제 때문에 꼬인 것 같다”며 “하지만 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기업들의 경우 불만의 강도는 더 셌다. A 대기업 관계자는 “압박의 체감 수위는 이전 정권보다 더 크다”며 “한 정권에서도 정책이 바뀌는 건 불안정성을 의미하며 기업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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