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총통은 1993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리덩후이(李登輝) 정부에서 법무부장(장관)에 발탁됐다. 장관 시절 3년3개월간 금권정치, 부패, 폭력조직과의 전쟁 등으로 청렴결백하고 소신 있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쌓았다. 1998년에는 타이베이 시장 선거에 출마, 천수이볜(陳水扁) 당시 시장을 5%포인트 차로 누르고 당선되는 바람을 일으켰다.
여세를 몰아 2008년에는 제12대 대만 총통선거에 나서 세창팅(謝長廷)후보를 큰 표 차이로 꺾고 총통에 당선됐다. 그는 경제적 업적을 바탕으로 이번 총통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다. 2008년 5월 취임 후 3년간 대만 경제를 살리고 중국과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에 서명한 것 등을 성과로 내세웠다.
실제 지난 2010년 경제성장률이 10%를 넘었고 지난해 경제성장률도 4%대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하지만 재임 기간 주택가격이 사상 최고로 치솟고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등 문제도 있었다. 또 기업과 재벌을 옹호하고 과도한 친중국 정책을 펴고 있다는 비난은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그는 1974년 국민당의 중산(中山)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뉴욕대학 법학석사(1976년), 하버드대학 법학박사(1981년) 학위를 받았다. 1981년 대만으로 돌아와 장징궈(蔣經國) 당시 총통의 영어 통역 비서로 활동하며 대만 정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
차이잉원 주석은 대만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의 조상은 청나라때 대만으로 이주해 왔으며, 대만 남부 핑둥(屛東)현의 부호의 딸로 태어났다. 차이잉원은 민진당이 2008년 대선에서 패배한 어려운 시기에 주석에 취임해 민진당 출신 천수이볜 전 총통의 부패 적발과 구속까지 겹쳐 창당 후 최대 위기에 처한 당을 되살려낸 ‘구세주’의 역할을 했다.
그는 민진당 주석 취임 후 3년간 9차례 각종 선거에서 집권 국민당에 맞서 7차례 승리했다. 미혼인 그는 부패 추문이 없고 솔직한 이미지가 강점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갔던 천수이볜 정권의 대만 독립 노선을 계승, 향후 양안관계에서 불안정성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보수 진영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차이 주석은 미국 코넬대 법학석사,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법학박사 출신이다. 그는 대만 정치대학교 교수와 대륙위원회 주임위원, 입법위원(국회의원), 행정원 부원장(부총리) 등을 역임했다.
제3후보인 친민당 쑹추위(宋楚瑜) 후보는 1942년생으로 대만독립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친중인사다. 대만 국립정치대학교에서 외교학 학사를 조지타운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다. 그는 친민당을 이끌고 있으며 이번 총통선거 출마는 그의 두번째 도전이다.
특히 그는 2000년 민진당의 천수이볜(陣水扁)과 국민당의 롄잔(連戰)이 맞붙었을 때 쑹추위는 국민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줄곧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쑹추위는 결국 천수이볜에 30만표 뒤지는 근소한 차로 석패했다. 이후 그는 국민당 표를 분열시켜 민진당에 정권을 넘겨줬다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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