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대 기업과 부자들> No.1 싼이중공업 량원건 회장 청년정신. 민간기업가에서 관리 변신하는 '역 샤하이' 저울질

(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2011년 업종별 부침에 따라 중국 부호(富豪) 천하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 재계 조사기관인 후룬바이푸(胡潤百福)에 따르면 건설기계분야 싼이(三一) 그룹의 량원건(梁穩根) 회장은 자산 700억 위안(한화 약 12조7442억원)으로 전년도 1위였던 음료업체 와하하 그룹의 쭝칭허우(宗慶后)를 제치고 중국 갑부의 왕좌를 차지했다.

▲ 좌절은 없다. 칠전팔기 오뚝이 인생
불과 56세의 나이로 세계 제 2대 경제대국 최고 부자에 등극한 량원건은 후난(湖南)성 롄위안(漣源)시 마오탕(茅塘)진 출신으로, 어린 시절에는 집안 돌림자 ‘융(永)’을 쓴 량융건으로 불리웠다.
이후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로 뛰어들면서 량 회장은 스스로 이름의 가운데 글자를 지금의 ‘원(穩)’으로 바꿨다. 진중한 사람이 되고 사업의 안정적인 발전을 실현하겠다는 량 회장의 ‘의지’가 담긴 이름이다.

1983년 중난(中南) 채광야금대학(<石+廣>冶學院)을 졸업한 량원건은 고급엔지니어로 국영기업인 훙위안(洪源)기계공장에 들어갔다. 3년 만에 기획처 부처장, 체제개혁위원회 부주임까지 꾀차며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았지만 량원건의 포부는 그 이상이었다. 제 2의 개혁 물결이 요동치던 1986년, 량원건은 돌연 ‘톄판완(鐵飯碗)’을 걷어차고‘샤하이(下海, 관직과 국영기업을 나와 창업에 뛰어드는 것)’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 경제 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실험 현장’을 만들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창업의 길로 들어섰지만 세상은 생각만큼 녹록치 않았다.
회사 문을 박차고 나온 그 해, 량 회장은 양 한마리를 팔면 20여 위안을 벌 수 있다는 정보를 접수하고 곧 3명의 파트너와 함께 샹시(湘西) 창더(常德) 구이저우(貴州) 등지로 가서 양을 사들였다. 그러나 후난으로 돌아와 위안단(元旦, 신정)을 보내고 나자 양 값은 곤두박질 쳤고 첫 번째 사업은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잇따라 바이주와 유리, 섬유에까지 손을 댔으나 번번히 실패로 끝이 났다.

보통 사람이라면 좌절할만도 했지만 숱한 실패 경험은 그를 오히려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었다. 마오쩌둥치하에서 실각과 복권을 거듭했던 부도옹 덩샤오핑(鄧小平)처럼 량원건은 실패속에서 성공의 기반을 다졌다. 그는 온갖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청년의 패기로 무장을 했다. 그리고 당시 황무지였던 금속접착제 사업에 주목, 종잣돈 6만 위안을 마련해 롄위안 마오탕 용접재료 사업에 나섰다.

작은 지하공장에서 량원건 등은 100여차례에 걸친 실험을 통해 첫 금속접착제를 만들어 냈다. 회사의 운명을 맡기고 량원건은 제품을 랴오닝(遼寧)의 한 공장에 판매했다. 그러나 품질 기준 미달로 제품이 사장 위기에 부딪히면서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참이었다. 다급해진 량원건은 자신의 제품을 들고 모교를 찾아갔다. 은사로부터 조언을 구한 량 회장은 제품 개량을 통해 시장 진출에 성공, 86년 9월 마침내 목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기쁜 마음에 눈시울마저 뜨거워졌다. 서로 부둥켜 안고 춤을 췄다". 량 회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사업 성공의 첫 기쁨을 맛본 량원건은 여세를 몰아 사업을 번창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때 그를 사로잡은 것은 막 붐이 일기시작한 인프라 건설 시장이었다.
"인프라 건설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었지만 건설에 필요한 설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당시만해도 중공업은 중국 국유기업이 독식하고 있던 분야로, 민영기업은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칠전팔기의 량원건은 망설임없이 중장비 제조 업계 1위를 목표로 설정, 결국 오늘 날 굴지의 기업인 싼이를 탄생시켰다.

▲ 일찍 일어난 새가 '높이 난다'
중국 최대 민영기업 싼이그룹을 진두지휘하는 량원건 회장의 하루는 이른 아침 회의와 함께 시작된다. 하루 중 오전이 일하기 가장 좋은 때라고 믿는 그가 1989년 싼이 간판을 내건 이후 지금까지 유지해온 습관이다. 해 뜰 무렵 아침을 먹으면서 업무 상황을 보고 받는 일은 일상이 된지 오래다.

최근에는 량 회장의 정계 진출설도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위원) 진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 후난성 부서기나 창사(長沙)시 서기직을 맡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역 샤하이인 셈이다. 그간 국유기업인이 정계에 진출한 경우는 많았지만 민간기업의 오너가 정계에 진출하는 '역 샤하이'의 선례는 거의 없었다.

량 회장의 정계 진출을 두고 업계 관계자들은 시장 공정성 침해 및 정경 유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량 회장의 싼이 회장직 사퇴와 지분 포기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가 출신의 중앙위원이 반드시 재계를 떠나야하는 것은 아닌 만큼 량 회장이 싼이를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싼이중공업 측은 "량 회장은 과거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싼이중공업을 떠나서 관직을 맡을 생각은 없다고 밝혀왔다"며 정계에 진출하더라도 현직을 유지할 것임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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