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박희태·박상천의 '운명'… 같은날 여의도서 퇴장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밀양 박씨에 1938년생 동갑내기. 서울법대 동기동창이자 고시사법과 13회 동기. 같은 검찰 출신에 정계 입문 시기(13대 국회)까지 같은 박희태 국회의장과 민주통합당 박상천 상임고문.

여야의 정치적 맞수로 한 시대를 풍미한 55년지기 박 의장과 박 상임고문이 공교롭게도 9일 여의도 정치 퇴장을 동시에 선언했다.

박 의장은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한 책임을 지고 의장직을 사퇴하고, 박 고문은 젊은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4ㆍ11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박 의장과 박 의원은 고향과 당적이 달랐을 뿐 서로 맞닿은 인생을 살았다는 점에서 이날 동반 퇴진의 의미는 남다르다.

경남 남해 출신인 박 의장은 부산고검장까지 올랐고,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박 고문은 순천지청장을 끝으로 검사생활을 마쳤다.
 
두 사람은 1988년 13대 총선에서 나란히 국회에 입성했다. 박 의장은 민주정의당, 박 고문은 평화민주당에 소속돼 국회의원 생활을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같은 시기 여야의 대변인을 맡아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이름을 높였고, 1997년에는 양당의 원내 사령탑인 원내총무를 동시에 맡는 등 정치권의 대표적 논객이자 맞수로 분류됐다.
 
원내총무 시절인 1997년, 두 사람은 담판을 벌여 당시 대선 후보인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TV토론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박 의장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인 1993년 법무부 장관에 올랐고, 박 고문은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초대 법무부 장관을 맡았다.
 
박 의장은 2003년과 2008년 두 차례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다. 17대 국회 전반기 국회 부의장을 지낸 후 2010년에는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에 올랐다.
 
박 고문은 세 차례 원내총무를 지낸 뒤 2003년 새천년민주당 대표, 2008년 통합민주당 공동대표 등 당의 수장 역할을 맡았다.
 
시련의 시기도 있었다. 박 의장은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공천에 탈락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2009년 10ㆍ28 재보선 때 양산 지역구에서 당선되며 6선에 성공했고 국회의장에 올랐다.
 
박 고문은 2003년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해나갈 때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을 지켰다. 이듬해 17대 총선에서 낙선하는 아픔을 겪었지만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다시 합당해 치른 18대 총선에서 5선 배지를 달았다.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당내 국회부의장 경선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박 고문은 지난해 펴낸 '한국정치의 민주화도정'이라는 책의 '영원한 맞수'라는 코너에서 박 의장과의 인연을 소개할 정도로 각별한 인연을 표시하기도 했다.
 
박 고문은 “우린 공격적 맞수가 아닌 협력적 맞수였다”고 회고했고, 박 의장도 “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친구를 위해 봉사했다는 생각이 있어 기분이 좋았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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