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된 것은 소극적 구조조정이 단초가 됐다는 게 일본 정부의 판단이다. 일본과 주요 업종에서 경쟁하고 있는 한국 기업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본 유니버셜조선과 IHI마린유나이티드가 지난 1월 합병을 결정한 가운데 가와사키중공업·사세보중공업·미쓰이조선 등의 참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시게미 구라하라 IHI마린유나이티드 사장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른 일본 조선사들과 상호 협력을 위한 문호를 활짝 열어 놓았다”고 전했다.
유니버셜조선과 IHI마린유나이티드가 합병하면 수주잔량 기준 세계 7위 조선업체로 부상하게 된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STX조선해양 등 한국 업체들이 추격 가시권에 들어오는 셈이다.
수주난이 합병을 부추기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국과 중국에 밀려 일본 업체들이 수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엔고까지 더해지면서 생존을 위해 합병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시스템반도체 기업들도 생존을 위해 합종연횡을 선택했다.
르네사스·파나소닉·후지쓰 3사는 시스템반도체 사업 통합을 전제로 협상에 들어갔다. 협상이 성공하면 매출 7조원 규모의 시스템 LSI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이 탄생한다.
3사 통합은 정부 주도로 이뤄진다. 산업혁신기구가 지분을 출자하고 사업을 전담할 법인을 새로 만드는 방식이다. 도시바와 소니, 히타치가 중소형 LCD 사업을 합친 방법과 동일하다.
낮은 생산성을 극복하기 위한 3사의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추격이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 5위인 삼성전자의 작년 성장률은 52.2%다. 글로벌 톱10 기업 중 가장 높았다. 올해 매출 목표는 15조원으로 추정된다. 르네사스를 뛰어 넘는 수준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일본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의 통합 움직임은 예전에도 많았다"며 "우리 계획에 맞춰 투자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닛신제강과 스테인리스 전문업체인 니혼금속공업도 지난해 합병을 선언했다. 양사는 세계 1위 스테인리스 제조업체로의 도약을 목표로 최종 제품과 최적의 생산체제를 편성, 효율적인 설비 투자에 나설 방침이다.
세계 1·2위를 다투는 일본 해운업계도 구조조정 격랑 속에 휩싸였다. 운임 하락과 유가 급등으로 적자에 허덕이고 있는 선사들의 합종연횡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3대 선사인 NYK, MOL, K-라인은 지난해부터 컨테이너선 사업부를 분사, 하나로 통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히타치제작소와 미쓰비시중공업도 주력 분야인 사회 인프라 사업을 통합할 예정이다.
업계 재편과 기업 간 구조조정이 순조롭게 추진되고, 내수시장까지 살아날 경우 일본 기업의 경쟁력은 쉽게 회복될 전망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일본에 비해 강력한 구조조정을 경험했지만 아직도 미흡한 수준"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통합을 촉진하도록 유도하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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