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북한산 제품에 대한 포괄적 금수조치가 없더라도 모든 북한산 수입품은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 발효를 앞두고 개성공단 역외(域外)가공이 우리 발목을 잡은 셈이다.
◆'개성공단 역외가공' 어려운 게임일까
한·중 FTA 협상을 앞둔 우리에게는 개성공단 역외가공이 기회일 수 있다.
한·중 FTA에 몸이 달대로 단 중국과의 FTA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 측이 개성공단 역외가공 규정을 조건으로 내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영무 외교통상부 FTA 심의관은 "자세한 내용은 협상에서 논의하겠다"며 입장표명을 보류했으나 이 같은 의견에 대해 부정을 하지는 않았다
정부가 아직 중국과 개성공단 역외가공 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보지도 않았지만 불가능한 제의는 아니다.
한 소식통은 "개성공단 역외가공 적용 문제에 대해 중국은 이를 적용하고 싶어하는 한국의 속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또 북한의 경제개방을 유도하는 중국의 입장에선 개성공단 역외가공을 굳이 반대할 명목이 없다. 이는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그동안 중국이 주장해온 바 북한이 중국식 경제체제를 모델로 발전하기를 바라 온 것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수는 있다.
한 외교소식통은 "다른 국가와의 FTA 체결 시 개성공단 역외가공 규정 문제는 북한의 입장이 고려대상이 아니었지만, 한·중 FTA의 경우 중국이 북한을 의식해 '북한과 합의할 부분'이라고 선을 그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 관계자도 "쉽지 않은 게임이 될 것"이라며 "(개성공단 역외가공지역 선정 문제는) 주관부처가 외교통상부와 지식경제부이지만 통일부도 주체가 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한·중 FTA에 포함시켜 미국 압박 카드로
우선 한·중 FTA 협상 테이블에서 우리측에 유리한 카드로 활용하는 게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한 협상 전문가는 "한·중 FTA에서 중국이 역외가공 문제를 들고 나온다 해도 FTA의 조속 협상을 기대하고 있는 중국 입장을 볼 때 한국 측이 (협상에서) 강하게 요구할 경우 일정 부분 소득을 올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한·중 FTA에서 개성공단 역외가공을 적용시킬 경우, 중국의 행보에 예민한 미국으로서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한·중 FTA가 향후 한·중·일 FTA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미래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주도적 역할을 할 한·중 FTA에 미국이 신경 쓰이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한·중 FTA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수시로 미국이 압박 공세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
역내 세력 확장을 꾀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국가간 교역 확대를 넘어 막대한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걸린 한·중 FTA 논의가 달갑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미 FTA 비준 후 미국의 최우선 통상정책은 지난해 말 일본까지 참여하기로 선언한 환대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만들어 아·태지역 경제블록을 구축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아직 미국이 직접적으로 우리 정부에 TPP 참여를 요구한 적은 없지만 한·중 FTA 협상이 본격화하는 시점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TPP 참여에 대한 우리의 명확한 태도 표명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 역외가공을 인정하지 않는 미국을 압박해 한·미 FTA의 걸림돌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박태호 통상교섭본부장은 "개성공단 역외가공 적용은 중국이 남북의 개성공단을 통한 경제교류에도 관심을 두겠지만 중국 역시 북·중 경제관계도 염두에 둘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한·중 FTA 협상에서 북한과 중국 간 협력사업이 진행 중인 나진·선봉, 황금평 경제특구 지역을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기 때문이다.
2007년 발효된 한국과 아세안 간 FTA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역외가공을 인정, 한국산 제품과 똑같이 관세혜택을 받게 한 것처럼 나진·선봉과 황금평에서 만드는 제품에도 한·중 FTA 혜택을 주는 방안을 고려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일부 지역과 한국·중국 간의 삼각 자유무역이 이뤄지게 된다.
◆한·중 FTA, 남·북·중 정치·외교문제도 함께 풀어야 할 과제
"한·중 FTA를 통해 중국의 대북정책이 바뀔 가능성도 점쳐볼 수 있다." 한·중 FTA 관련 실무를 맡고 있는 한 정부 관계자가 한 말이다.
한·중 FTA로 개성공단 역외가공으로 생산된 제품이 FTA에 적용된다면, 이는 중국이 한국의 대북정책을 인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김영무 통상교섭본부 FTA 심의관은 "개성공단의 안정성 확보와 북한의 개혁개방 촉진은 물론, 협상이 개시되면 (개성공단 역외가공 문제를) 제기하겠지만 이에 따른 외교·안보적 효과는 무시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소식통도 "한·중 FTA는 북한과 긴밀한 중국과 '경제동맹'을 맺는다는 특수성 때문에 남북관계 개선 문제도 염두에 두고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차원으로 보인다.
더 나아가 한·중 FTA 협상을 계기로 나진·선봉 경제특구와 황금평에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도 참여하는 방안이 논의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런 안이 현실화될 경우, 나진·선봉, 황금평에서 만든 중국산 제품을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것은 물론, 여기서 생산된 우리 제품을 중국에 수출하는 것도 예상할 수 있다.
이럴 경우 한국과 중국에 이어 북한이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중국이 바라는 것은 북한이 붕괴하지 않고 경제적으로 생존하는 것"이라며 "한·중 FTA에 중국은 물론 북한도 호감을 갖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