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규의 중국이야기> 8-4. 중국인들의 희로애락-춘제[(春節,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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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1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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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한족 설의 키워드 두이롄(對聯) 녠훠(年貨) 녠예판

설 특집 방송보고 밤참 녠예판 들며 제야 보내



중국에선 춘제(春節 설)를 다녠(大年 큰설), 이보다 일주일 이른 음력 섣달 23일을 샤오녠(小年)이라고 한다. 여기서 `녠(年)`은 악한 기운을 뜻한다. 중국인들이 춘제를 `궈녠(過年)`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 불운을 떨쳐낸다는 의미로 설을 쇤다는 우리말과 같다. 한족 인구가 93%를 넘는 중국의 춘제 풍속도는 여러면에서 우리의 설과 유사하다.

중국의 설 준비는 샤오녠부터 시작된다. 대문 양 옆에 부귀 평안을 기원하는 두이롄(對聯)을 붙이고 집 안팎을 청소한다. 의복과 술, 음식 위주로 녠훠(年貨)라는 설빔을 준비하고 귀향선물을 꾸리는 것도 익숙한 풍경이다. 중국 민간에도 그믐날 밤 잠을 자면 눈썹이 세고 일년 내내 악한 기운에 시달린다는 속설이 있다.

흩어졌던 가족들은 춘제 때 모여 퇀위안판(團圓飯)이라는 식사를 즐긴다. 이는 함께 모여 식사를 한다는 뜻이며 지역별로 돼지고기와 만두, 닭고기, 생선 등의 음식을 먹는다. 가족이 모여 많은 얘기를 나누지만 약속이나 한듯 정치 애기는 좀체 화제에 오르지 않는다. 자정 무렵 녠예판(年夜飯)이라는 밤참을 먹고 캄캄한 밤길에 나가 폭죽을 놓는다. 설날 아침에는 아이들에게 야수이첸(壓歲錢 세배돈)을 건넨다.

중국의 설 풍속중에는 먀오후이(廟會)도 흥밋거리다. 제사와 시장을 겸한 사찰 활동이었던 먀오후이는 수천년 전통을 이어오다 지난 1960년대 극좌의 사회분위기 속에 폐쇄됐다가 80년대초 개혁개방과 함께 부활했다. 지금은 각 정부와 기관, 상점들이 먀오후이를 설특수의 경제교역 공간(시장)으로 삼고 있다.

지난 2006년에는 설이 1월 28일이었다. 설하루 전인 27일 나와 아이는 허베이(河北)성 한단에 사는 중국친구의 초대를 받아 베이징 서역에서 오후 5시 기차를 타고 한단으로 떠났다. 기차는 5시간쯤 달려 밤 10시 30분께 한단역에 도착했다. 귀성이 설 열흘전부터 시작되기 때문인지 정작 설 전날의 기차역은 적막할 정도였다.

택시로 한단시 루오청(羅城) 제 2생활구로 가자고 하니 기본 요금 5위안이 초과하지 않는 거리에 내려줬다. 밤 11시쯤 됐는데 사위가 한밤중 처럼 캄캄했다. 기사에게 물어보니 추시(제야)라서 가족끼리 모여 녠예판을 먹으며 집안에서 신년 맞을 채비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친구 가족은 부모님과 각각 슈퍼 판매원과 철도 노동자인 누나 부부, 조카 이렇게 5명이었는데 가족 처럼 따뜻하게 손님을 맞아줬다. 5층 짜리 낡은 아파트였으나 깨끗하게 정돈돼 있었고 가족들은 모두 소박하고 다정다감했다.

우리는 CCTV의 춘제 저녁 특별 방송을 보면서 물만두와 닭고기 완자 등 친구 아버님이 직접 만든 녠예판을 먹고 바이쥬도 한잔 마셨다. 밤 12시가 되자 집밖에는 폭죽 놀이가 장관을 이뤘다. 우리는 이날 밤 늦게 까지 고향과 어린 시절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중국인들은 설이 일주일쯤 앞으로 다가오면 복(福)맞이 행사의 일환으로 대문 양옆에 두이롄(對聯)을 붙여 행운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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