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산촌 마을의 설, 명절 대목엔 냉기만
설날 아침 허베이(河北)성 한단에는 서설이 내렸다. 우리는 친구를 따라 동네 친지들 집으로 바이녠(拜年 세배)하러 다녔다. 노인들은 젊은사람들에게 인사를 받은 뒤 차와 사탕 담배같은 것들을 권했다. “직장 생활 어떤가? 집은 샀느냐? 몇 ㎡냐” 그들의 관심사도 우리네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마을 세배를 마친 뒤 친구는 우리를 데리고 차로 두시간을 달려 어렸을 때 자기가 살던 산속의 탄광촌을 찾았다. 한때 탄광 산업으로 번영을 누렸던 이곳은 지금 사람들이 자꾸 떠나면서 황량하고 생기없는 산간 벽지 마을로 변해 있었다. 친구는 2000명이 한꺼번에 샤워할수 있었다는 낡은 목욕탕 건물을 가르키며 이곳에 과거 거대한 국유기업이 있었다고 소개했다.
과거 사회주의 인민공사시절의 단층짜리 단독주택과 3~4층 연립형 낡은 가옥들이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세월의 영고성쇄를 말해주고 있었다. 중심가 였을 것 같은 지역에는 대형 회당과 학교교실, 대형 병원이 들어서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폐쇄된 상태였다.
쇠락한 탄광촌의 겨울은 쌩쌩 매서운 겨울바람이 지나갈때 마다 한층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경제활동에 아무 생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도 사람들은 마을 공회당 같은 곳에 모여 폭죽을 떠뜨렸다. 마을안의 작은 구멍가게는 문밖 매대에서 폭죽을 팔고 있었다.
친구를 따라 이집 저집 세배를 다니다 어떤 집에서 약간의 음식을 곁들여 제법 푸짐하게 바이쥬(白酒 고량주) 술상을 대접 받았다. 예전에 이곳에서 교사를 했다는 노인은 독한 고량주를 권하면서 한단의 내력에 대해 얘기했다.
“한단은 옛날 전국 시대의 강국인 조(趙)왕국의 수도였지요. 지금도 시내 공원에 가면 고도(古都)의 흔적이 더러 남아있어요. 성내 인구는 120만명, 성밖까지 합하면 전체 인구가 800만명 정도 됩니다. 인구로는 허베이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이지만 발전의 대열에 들지 못했어요.”
한단은 인정 많고 선량한 사람들을 빼놓고는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도시같았다. 인구가 800만명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시는 조용하고 삭막하게 느껴지기 까지 했다. 그나마 새벽부터 내린 눈이 건조한 도시 서정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하룻밤을 묶은 뒤 설 당일 베이징으로 돌아오려고 기차역에 나갔더니 역광장이 인산인해여서 표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해보였다. 내일부터 정상 출근인데 여기서 무슨수로 베이징으로 돌아가나. 참으로 난감했다.
배웅 나왔던 친구가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인파를 헤집고 표 판매 창구 쪽으로 들어갔다. 그는 안내원에게 뭐라고 묻더니 창구옆의 안내판을 살펴본뒤 반색이 돼 돌아왔다. 안내판에 전인대 대표, 정협 위원, 군인에다가 기자까지 곁들여 차표 구입에 대해 혜택을 준다는 공고문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우대혜택에 기자까지 포함돼 있다니? 이런 특전은 처음이었다. 퍽이나 다행스런 일이었다. 요구대로 여권과 중국 국가외교부가 발급한 프레스 카드를 함께 보여주자 매표원은 고맙게도 베이징 서역까지 가는 기차표 두장을 내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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