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덕형·임재천·김형욱·이혜림·홍성환 기자) 기술 한국을 주도했던 전문인력들의 중국 유출이 전방위로 이뤄지고 있다. 과거 첨단산업 중심으로 이뤄지던 '산업스파이'와는 또다른 양상이다. 베이비부머(1955~63년생) 세대 은퇴와 맞물려 유출규모와 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부터 정년퇴직을 맞은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중국 취업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년퇴직자 가운데 소위 '기능직'에 속한 인력의 경우 그들이 보유한 기술도 함께 유출되는 사례가 많아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직 국정원 고위관계자에 따르면 해외로 기술을 유출한 산업스파이 적발건수는 지난 2004년도에 26건이었던 것이 해마다 40건 이상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제적 손실도 연간 50조원에 이를 만큼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는 산업스파이 외에도 정년퇴직 후 중국으로 이직하는 '저소득 전문직'들이 증가하면서 보유기술 유출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이와 맞물려 중국 기업들의 한국 인재 영입전략도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
◆ 첨단 전자기술 유출 많아
최근 들어 국내 전자업계는 보안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한국의 기술과 전문인력을 영입, 기술 격차를 줄이려는 사례가 자주 목격되기 때문이다. 중국은 최근 임금상승에 따른 구조조정과 기술 업그레이드를 추진 중이어서 향후 전문인력 빼가기는 전방위로 확산될 조짐이다.
지난해 LG디스플레이 연구인력 가운데 일부가 중국 2위 TV 업체인 TCL로 이직했다. TCL은 LCD패널 사업 진출을 위해 중국 내 8세대 LCD 공장을 건설한다고 발표, 글로벌 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다. 때문에 당시 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사내 보안 강화를 직접 지시하기도 했다.
LG전자는 현재 55세부터 58세까지 3년 동안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수혜를 받는 인원은 100명 이하다. 은퇴 후 기능직 관리 프로그램도 마련되지 않았다. 다만 일본 도쿄연구소의 이소노 고문(66)처럼 회사가 인정하는 인재는 정년을 넘겨도 근무가 가능하다. 이소노 고문은 TV의 핵심기술인 전원회로 전문가다.
삼성코닝정밀소재에 근무하는 기술인력들도 중국 기판유리 제조업체들의 스카우트 대상이다. 하지만 인재 유출과 관련해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곳은 바로 삼성전자다. 과거 삼성전자 수석연구원이 백색가전의 핵심기술을 빼돌려 중국 가전업체인 하이얼로 이직하려다 적발된 사례가 있어 재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전자업계 관계자는 "중국 기업들은 현지 근무 경험자를 대상으로 전방위적인 인력 스카우트를 하고 있다"며 "임원에 속하는 총경리 직급을 내세워 전문인력 빼가기에 올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 연봉 50% 더 주고 조종사 빼가기
한국 조종사들의 중국 항공사로의 이직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난해 말 기준 중국에 새로 설립된 신규 항공사는 모두 8곳으로 자치구의 중소 항공사까지 합하면 총 50개가 난립하고 있다.
올해 중국 항공사가 스카우트하려는 조종사는 대략 400명이다. 이 가운데 200여명을 한국에서 조달할 방침이어서 국내 항공사들은 현재 초비상 상태다. 한국 조종사들의 기량이 뛰어나고, 유럽·미국의 조종사보다 중국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특히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지난 2010~2011년 사이 이스타항공의 조종사 10여명이 집단으로 퇴사, 중국 항공사로 이직했다. 이들은 기존보다 50% 이상의 고액 연봉을 제시받았고, 휴가·월차 등 연간 휴일이 60일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중국의 한국 조종사 스카우트는 무서울 정도"라며 "분위기를 감지한 국내 항공사들도 집안 단속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 완성차보다 중소 협력업체가 문제
자동차업계는 타 업종에 비해 이직률이 덜하다. 중국으로의 인력 유출이 직접 보고된 사례도 없다. 특히 현행 법규상 자동차업계 연구·개발 종사자가 동종업계로 이직하는 것 자체가 불법인 만큼 이직을 통한 기술유출 사례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내부 직원의 개인적인 기술 유출 및 중소기업·협력사들의 피해사례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에 대해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지난 2007년 미수에 그치긴 했지만 현대차 직원이 구형 변속기술을 중국 자동차업체 장후이(JAC)사에 10억여원을 받고 넘긴 일이 적발됐다.
특히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중소기업의 경우 중국으로의 인력 및 기술 유출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10년에는 한 중소기업의 해외영업 담당자가 자동차용 내비게이션 기술을 중국에 넘기기도 했다. 지난해 3월에는 배정달 전 S&T모터스 대표가 기술 유출 혐의로 고소되기도 했다.
이 같은 국내 기술인력들의 중국 유출과 관련해 우만선 산업인력공단 취업기획팀장은 "기술인력 외에도 국내 취업이 어려운 경력직 인재들이 중국으로 가는 경우가 많다"며 "초기 임금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3~4년 근무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임금이 크게 올라가기 때문에 중국 취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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