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가 불어닥친 지난 17일 오후,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하철 2호선 이대 지하철역에서 이화여대 정문까지 이어진 '이대 로드'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1990년대 '젊음의 거리, 패션의 거리'로 불리던 신촌·이대 상권은 2000년대 중반부터 긴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최근 몰려드는 중국인 관광객들로 다시 부활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신촌·이대 상권 숨통 틔운 것은 중화권 관광객
이대 로드는 현재 정문을 기점으로 20여개가 넘는 화장품 가게가 성업 중이다. 일부 브랜드의 경우, 200여m 간격으로 점포를 2개나 운영하고 있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매장에는 중국어로 된 안내문구가 적혀 있었고, 중국어 구사가 가능한 직원들을 채용했다. 단체관광객 대부분은 가족이나 지인들 선물로 마스크팩과 BB크림 등을 구매했다. 한 사람이 20만원이 넘는 물품을 구입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대 정문에서 단체사진을 찍는 중국인들의 모습은 이제 익숙한 광경이 됐다. 본래 '배꽃'이라는 뜻의 이화(梨花)는 중국어로 각각 이익을 뜻하는 '利(li)'·돈을 번다는 '發(fa)'와 발음이 비슷해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기 때문이다.
톈진(天津) 출신의 리샤오팅(李小婷·27)은 ""이대 정문에서 사진을 찍으면 노처녀가 좋은 집안으로 시집을 간다는 소문이 많지만 이젠 너무 유명해 사진 찍는 걸 자제할 정도"라고 말했다.
유명 맛집도 중국 관광객 특수를 맞고 있다. 이대앞 유명 맛집인 '0 분식'과 'ㅁ 떡볶이'에도 중국인 관광객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가족과 함께 한국을 찾은 추이빈(崔斌·48)은 "아내와 딸이 여행 전에 미리 맛집을 검색해둬 쉽게 찾을 수 있었다"며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식당이나 음식에 비해 진짜 한국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이라 더 흥미롭다"고 말했다.
중국 관광객들의 방문이 증가하면서 인근 상권에 대한 문의도 잇따르고 있다. 주변 공인중개업체 관계자는 "이대 상권은 최근 2년간 임대료가 20% 이상 올랐다"며 "홍대로 빠져나간 한국 젊은이들의 빈 자리를 중국 관광객들이 채워주고 있다"고 말했다.
◆ '구관이 명관'…동대문 여전한 인기
신촌 일대가 중국 관광객들의 새로운 관광명소라면 '동대문'은 여전히 필수코스다. 지난해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중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쇼핑장소 1위가 시내면세점(93.0%), 2위가 동대문(70.3%)이었다.
지난 18일, 영하 6도의 추운 날씨 속에서도 중국인 관광객들은 동대문 두산타워에서 굿모닝시티까지 약 100m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동대문 쇼핑몰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김씨는 "75%는 중국인, 10%는 일본인, 5%는 한국인 손님"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화장품 매장 조선족 직원 역시 "중국인 관광객이 없으면 장사를 하지 말란 소리"라며 "이미 동대문은 한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장사가 아니라 중국인을 상대로 장사하는 곳"이라고 전했다.
매출에서도 중국인은 동대문 상인들에게 큰손이다. 이곳 쇼핑몰에서 5~6개의 쇼핑백을 든 중국인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의류점을 하는 김씨는 "중국인들은 한 번에 20만~30만원씩 쇼핑을 해 일본인 3~4명에게 파는 것보다 중국인 1명에게 파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중국 관광객들이 신촌·이대 등으로 활동폭을 넓히면서 동대문·명동 등의 상인 집객을 위해 추가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며 "2015년 제2롯데월드가 들어설 잠실지역도 최근 석촌호수 주변으로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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